김수산 여주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수산 여주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얼마 전, 친한 도예가가 자신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도자 상품 디자인이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도용돼, 대기업이나 중국 OEM 제품으로 둔갑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보증 인원이 적은 소규모 행사에서는 신규 상품을 팔기가 두렵다고 하는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수공예 도예가들은 대량생산성이 약한 반면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본인만의 디자인과 기능을 입힌 유니크한 도자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디자인 개발 시간이 길고, 제작이 까다로운 창작품일수록 상품의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가격경쟁에서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도예가들은 독창성과 기능성, 심미성을 갖춘 상품을 개발·출시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창작된 도예가들의 좋은 도자 상품들이 제대로 출시되기도 전에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 OEM을 통한 유통업자들은 도예가들의 상품이 생산량이나 가격경쟁에서 불리한 점을 악용, 반응이 좋은 상품들을 싸구려 멜라민 재질로 변형하거나 대량생산해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창작은 더욱 힘들어지고, 어렵게 만든 도자 상품 디자인이 불법 복사돼 대량으로 유통되는 것은 쉬워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창작한 디자인은 특허청에 등록하여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업에서도 비용과 시간을 부담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수십 개의 디자인 중 특정 상품의 디자인에 대해서만 권리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물며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도예가들에게 특허등록은 기업들의 일반적인 관행보다 더욱 어려움이 따른다. 특허등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을 이미 도용당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등록을 진행하다가 시간,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2010년 1월 특허청 고시(제2009-38호)에 따라 디자인공지증명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디자인공지증명제도는 해당 분야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전문 공지 기관으로 선정해, 비록 권리화되지 않은 디자인이라도 경쟁업체의 모방 및 분쟁에 보다 손쉽게 대응하고, 출원 등록비용 및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고 한다.

디자인 공지 기관의 역할은 디자인 등록 플랫폼을 구축하고, 창작 디자인의 공지 신청이 접수되면 플랫폼을 통해 해당 디자인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공신력을 높이고, 인터넷을 통해 디자인DB 등을 제공한다. 또한 신청인에게는 공지 증명서가 발급된다. 이를 통해 출원 등록보다 빠른 대응으로 모인 출원을 방지할 수 있게 되고, 분쟁이 일어날 경우, 공지일 및 창작자에 대한 효과적인 증명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특허청 방문조차 어려웠던 도예가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흐름에 따라 도예계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젊은 세대 도예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이 깨졌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 소통 없이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들은 근래 도예촌 같은 마을이나 모임을 형성하여 서로의 노하우와 문제점을 공유하며 환경 변화와 시대 흐름에 따른 자구책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도자재단에서 조사한 도자 센서스 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수공예 요장은 1천600여개소이고 특히, 이 중에서 약 60%가 질 좋은 흙과 재료, 유통의 편리성 등 지리적 조건이 좋은 경기도 지역에 모여 있다고 한다. 디자인 도용에 대한 문제와 디자인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들에게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경기도와 한국도자재단이 지난 3월, 도자 디자인 피해 사례가 있는 도예인들을 대상으로 특별 간담회를 개최하고, 도용사례 청취 및 디자인 보호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경기도와 한국도자재단이 도자 디자인 보호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선량한 도예가들이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이 더 빨리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수산 여주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