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들려오는, 아니 제보되는 혁신교육은 '방 안의 코끼리(모두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현상)'신세라고 한다.
학교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그럴듯한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지난달 경기도 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의 교장 공모제 개혁안에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교장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라는 그럴듯한 슬로건을 내놓았다. 한데 선거 공신들에게 교장 자리 나누어주기 위해 꼼수를 쓰다 이제는 중·고등학생들에게까지 교장 심사권을 주기로 한다니 이건 하지 하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교육에 인생의 혼을 묻으려는 대다수 교원들에게 무자격 교장의 행간에 숨은 '노림수'에 허탈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운동 경력으로 유명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유능함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겉으로는 혁신교육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상위직급(교장) 권력욕에 눈이 먼 모순된 표층구조의 심층을 이루는 일부 교사가 교육계의 미꾸라지 노릇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선 교원들의 반응은 냉소를 넘어 자조적으로 '자기들끼리 리그'라면서 시큰둥하다는 여론이다. 언어적 유희로 포장된 포퓰리즘 교육정책이 정치적 동기로 추동되었을 때 어떤 교육적 참사가 일어나는지는 혁신교육의 실패가 방증한다. 혁신교육의 순기능은 온데간데없고 역기능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다.
결론은 전교조 활동가가 교장이 되는 지름길로 활용하기 위한 개혁안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혁신학교 지정의 비민주성이다.
학교교육에서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고시한 국가 수준의 초·중등 교과과정과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나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 교과 이외의 활동을 말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돼있다. 전술한 교과과정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유능한 교사들의 모습이다.
이때 직무의 독립성이 강한 교사들의 수업 형태 즉 교육과정의 운영은 학교와 교사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고 장려할 사안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다양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동기부여를 하여 교육력을 높이는 것이 주안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혁신학교 신청이 저조하다 보니 교육장, 과장, 장학사가 총동원되어 애꿎은 일선학교에 압력을 행사한다. 모 교육장은 전화로 모 과장은 메신저로 교장·교감에게 인사 불이익 운운하며 회유와 협박성 압력을 가한다고 한다. 혁신학교 신청은 학부모와 일선 교사들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되는데 교육의 본질을 잘 아는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요즘 학부모들은 교사 이상 가는 교육적 식견과 지성이 면도날만큼이나 예리하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해도 학원을 찾고, 공부를 못 해도 학원을 찾는 '평준화의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교육계가 이만큼 굴러가는 것은 전문직주의(프로패셔널리즘)의 원형을 이루는 교사의 기층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의 본질은 사회상규와 사회통념의 범위 안에서 의도성과 강제성이 수반될 때 진정한 교육이 된다. 이 같은 덕목을 벗어나는 교육은 교육적이지도 않고 교육자의 자세도 아니며 교사가 적당히 넘어간다면 방임이자 방기(放棄)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은 정무직이라서 언제라도 국민의 심판으로 그 자리에서 단명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교육계의 근간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로 취득한 학교장과 무자격 교장 즉 교원사회 구성원끼리 치고받는 상황을 유발시키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가 심히 우려스럽다. 학부모들에게 달콤한 혁신학교가 장마철 흙담처럼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김기연 前 평택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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