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신고·진압'→'피난 우선' 변경 홍보
작년동기比 사망자 28.6%·부상자 14.9%↓
평소 비상구등 확인 신속대피 능력 키워야

'삼십육계'는 36가지 계책(計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36가지 계책 가운데 36번째 계책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제36번째 계책은 정확히 말하면 '삼십육계 주위상책'이다. 이는 '36번째 계책은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뜻인데, 이것을 줄여 '주위상' 또는 '주위상책'이라 한다.
병법 측면에서 볼 때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니 이것이 무슨 병법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달아남'은 아무 대책 없이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장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후일을 기약하며 퇴각했다가 전력을 보강해 다시 싸움에 임한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있다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주택·학교·병원·대형마트 등 생활과 밀접한 공간에서 화재와 맞닥뜨린다면 전장(戰場)이 아니더라도 '삼십육계 주위상책'이 생존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의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월 소방청은 '화재 시 행동요령 국민인식도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응답자의 35.7%가 가정에서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한다'를 택했고, 활동 중인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는 31.2%가 같은 선택을 했다. '대피'보다 '신고'가 먼저라고 인식하는 국민이 의외로 많았고 이는 예견된 결과일 수 있다. 과거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신고가 지연되는 경우도 많았고 현장을 정확히 설명한다 한들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신고 후, 소화기로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고 배웠으며, 또 그렇게 실천해왔던 게 사실이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전체 화재 대비 인명피해 발생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는데 화재 발생수는 감소했다. 반면 화재로 인한 사상자 비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영화나 매체를 통해 우리는 화재가 난 후 순식간에 건물 전체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는 장면에 익숙하다. 이는 가연성 건축자재의 사용 증가로 화재 시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하게 되고,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연소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런 화재의 특성을 반영해 올해부터 소방청은 대국민 홍보와 교육 기조를 변경, 화재 시 대처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을 '신고와 진압'에서 '피난 우선'으로 바꿨고, 그 결과 불과 반년 만에 작년 동기간 대비 사망자 28.6% 감소, 부상자 14.9% 감소라는 괄목할 변화를 이끌어 냈다.
얼마 전 천안 차암초등학교와 서울 은평구 은명초등학교 화재현장에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각 910명, 127명이 안전하게 대피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피난 우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으며 앞으로의 소방 훈련과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평소에 자주 출입하는 장소의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고, 낯선 곳이라도 유도 표지나 유도등을 잘 식별해 어느 공간에서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타인의 안전을 위해 방화문을 닫고 대피하는 것이 바람직한 안전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017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와 지난해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 않은가. 더 이상은 가슴 아픈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급박한 재난 시 '삼십육계 주위상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임국빈 군포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