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주·정차 차량
소방통로가 나와 내 가족에게
오는 통로라 생각한다면,
안전수칙들이 저절로 떠오를 것

화재, 구조, 구급 모든 재난 출동에서 골든타임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법 주·정차는 소방차가 골든타임 내에 도착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을 위한 주택의 출입구, 이면도로는 물론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소화전 앞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불법 주·정차로 재난현장의 소방차 도달시간은 늦어진다.
특히, 대형차인 소방차는 일반차보다 통행에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이나 대피가 어려운 고층건물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사다리소방차 등 특수소방차를 활용해 신속하게 인명 대피를 해야 하는데, 불법 주·정차 때문에 화재현장의 접근 자체가 어려워 다수 인명피해가 항상 상존하고 있다.
또한 주택가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퇴근시간 이후에는 차량이 일시에 몰리게 되면서 불법 주·정차가 특히 더 심각하다. 공동주택 야간 화재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하면 역시나 인명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동주택의 경우 기존에 소방차 전용구역이 법에 근거 없이 자율적으로 그려져오던 것을 2018년 8월 소방기본법을 개정, 시행해 소방자동차 전용구역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소방통로 확보를 강화했지만, 개정된 법이 시행된 이후 건축허가를 신청한 공동주택이 적용 대상이어서, 법령 시행 이전에 지어진 공동주택의 경우 법의 적용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실제로 법이 적용되는 공동주택은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국회에서 법령 시행 이전에 지정된 소방자동차 전용구역도 시행된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법령 개정 중에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소방서에서는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 다양한 시간대와 장소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실시하고, 각종 캠페인과 매체를 통해 홍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반복된 훈련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불법 주·정차는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불법 주·정차를 줄이기 위해 CCTV를 설치하고 단속요원을 동원해서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과태료 처분을 하는 것과 같이 강제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안전불감증 타파와 기본안전수칙 준수를 통한 시민의 자발적인 안전의식 개선이 보다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재난 예방은 대부분 일상 속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 불법 주·정차의 문제 역시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부분이다. 재난이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조금만 편하게 가기 위해,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너무나 쉽게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하게 된다. 이렇게 주차된 나의 차로 인해 이웃은 물론이고 나와 내 가족이 재난 속에서 고립될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소방통로가 나와 내 가족에게 오는 통로라 생각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생각을 고쳐 실천으로 옮겨야 할 안전수칙들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나의 작은 실천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조창래 화성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