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강태풍·ASF… 유난히 길고 힘든 시간
봄이 오면 논·밭 씨앗 뿌리듯 또다시 일어나
정부는 농촌 패러다임 전환·과감한 투자를
찾고, 살고, 일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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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지난해는 농업인에게 연이은 가을 태풍,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농산물값 폭락 등으로 유난히도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먼저 태풍은 100년만에 가장 많은 가을 태풍이 한반도를 덮친 한 해로 기록됐다. 태풍 '링링', '타파', '미탁'이 연이어 우리나라를 강타해 농어촌에 큰 피해를 남겼고, 농산물 가격마저 낮게 형성되면서 농업인들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경기도 파주 양돈장에서 국내 첫 확진 판정을 받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축산농가에 큰 피해를 줬다. 총 260여 농가에서 사육했던 돼지 40만마리가 살처분되면서 파주·연천·김포·강화 등 접경지역 농가들은 아직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0월25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1995년 WTO에 가입하면서 농업부문의 관세와 보조금을 3분의 2만 이행하는 조건으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었다. 현행 관세율은 쌀 513%, 대두 487%, 마늘 360%, 고추 270%이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를 잃어 WTO 차기협상이 타결되면 현행 농산물의 관세율은 인하되어야 한다. 그동안 쌀 변동직불에 주로 쓰이던 감축 대상 보조금인 농업보조총액(AMS)도 연간 1조4천900억원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처럼 선진국으로 간주되면 관세와 농업보조금을 대폭 감축해야 하기 때문에 농업인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생명의 근간인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봄이 오면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듯이 또다시 일어나 풍요와 희망의 싹을 일궈내야 한다. 올해는 경자년(庚子年). 흰 쥐띠의 해로 어둠 속에서 번성과 번영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농업계도 지혜롭게 똘똘 뭉쳐 기회의 해를 시작해야겠다.

정부 역시 사람과 환경중심의 미래 농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농업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 공유와 소통, 환경과 생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공익적 가치를 중시하는 농업·농촌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한국농업의 미래를 여는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생명공학기술(BT)을 접목한 스마트팜 혁신 밸리를 조성하여 젊은 청년들의 도전현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신기술을 이용해 안정적 고품질 농식품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소비시장을 국내에만 한정하지 말고 신남방시장과 할랄시장 등 전 세계를 향해 수출해야 한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실현과 소득안정을 위한 공익직불제 확대지원, 6차 산업화를 통한 첨단 융복합 벤처농업 육성, 로컬푸드 산업 활성화로 농가소득 향상에도 힘써야 한다. 가축방역의 사전 예방시스템을 구축하고 조기에 대응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겠다. 또한 농산물의 단순 재배에서 벗어나 농촌관광산업을 연계하는 농업 경영의 다각화와 안정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농촌을 찾고 싶고,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 농촌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어린이 돌봄시설, 노인요양시설, 주민건강센터, 체육시설, 문화센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인프라와 생활SOC를 대폭 확충해야겠다. 대기업과 농업·농촌이 손을 잡고 상생하는 농촌복지 환경을 조성해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지역사회에 활기를 넣고 지역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올해야말로 우리나라 농업·농촌발전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는 여정을 펼치며, 모든 농업인들의 가슴에 간직된 소중한 꿈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