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갱이 가족 낙인' 마음의 벽 쌓은
90세 막냇동생이 인천전시회 찾아
딸 황명숙도 남편·사위·손주와 함께
"훌륭한 할아버지 작품 만나 좋아"
1주일이 지나면 꼭 돌아오겠다던 형을 70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북한 최고의 조선화가로 평가받는 화봉(華峯) 황영준(黃榮俊, 1919~2002)의 막냇동생(90)이 꿈에서도 잊은 적 없던 형의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30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를 찾은 막냇동생은 "그동안 그리움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동생의 전시회 방문은 그의 조카이자 황영준의 막내딸 황명숙(73)씨 제안으로 이뤄졌다. 황명숙씨의 남편과 사위, 손주들이 함께 왔으니 4대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황명숙씨는 12살 차이가 나는 형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넘어간 이후 친딸처럼 키웠던 조카다.
경인일보는 지난해 12월 말 수소문 끝에 충북 옥천에 사는 황영준 선생의 동생을 만났지만, 그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었다. 북으로 건너간 형 때문에 '빨갱이 가족'으로 손가락질 당했던 세월과 형의 명성을 이용해 접근했던 사기꾼들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분단의 비극은 남한에 남겨진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황영준 선생이 북한으로 넘어간 이후 바로 아래 동생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둘째 동생은 교사 생활을 했지만, 연좌제로 인해 결국 교단에서 내려와야 했다.
황영준 선생의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후유증으로 요절했다고 한다. 이날 전시회장을 찾은 막냇동생은 형이 죽었다고만 생각하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았다. 그래서 황명숙씨도 아버지를 마음 속에만 꽁꽁 묶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벽은 형의 그림 200여 점이 걸린 전시회장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어릴 때 형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봤던 그 그림들과 같은 풍이었다.
황영준 선생은 그림으로 남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나무에 앉은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 바로 딸에 대한 그리움을 짙게 표현한 것이었다.
황영준 선생이 1958년 그린 '협동농민의 모습' 속 여인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고 동생은 전했다. 1968년 그린 한 작업반 여성의 그림은 마치 딸 명숙씨가 성인이 된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하게 그렸다고 한다.
황명숙씨는 이 그림을 보고 "젊었을 때 내 모습과 신기하게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황명숙씨는 "제일 가까이 이마를 맞대고 속마음까지 나눠야 할 내 혈육들은 어디 있느냐"는 아버지의 글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황영준 선생의 외증손녀 이다예린(10)양과 이레(8)군도 외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신기한 듯 작품에 푹 빠졌다. 다예린양은 "그림이 참 예뻤고, 특히 백두산 그림이 가장 좋았다"며 "이렇게 훌륭한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인천에 와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