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하원의장의 '대통령 탄핵주도'에
트럼프, 연설문 준후 '악수외면' 증오심 표출
민주당 어떤후보가 '재선' 저지할 수 있을까
제각기 슈퍼화요일(3·3)대회전 향해 분투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미국은 건국 초창기 청교도 정신과 함께 신사도(紳士道)가 있었다. 두 사람의 남자가 서로를 증오할 때 언성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결투를 신청하면 되고, 참관인이 임석한 가운데 총을 뽑으면 되었다. 황야의 총잡이나 보안관은 물론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마지막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풍모, 언변, 통찰력까지 당대 최고의 미국인이었으나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당시 부통령과 허드슨강 기슭에 마주 섰다. 두뇌 회전은 누구보다 빨랐지만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는 동작은 빠르지 못하였다. 50세를 맞이하지 못하고 미합중국 건국의 노을 속으로 사라져간 해밀턴을 미국인들은 아직도 그리워한다. 명예를 중시하던 그때 그 시절의 남자들은 설전(舌戰) 대신 결투(Dueling)를 신사도의 하나로 간주했다. 21세기의 지금은 정계는 물론 마피아 거리에서조차 낭만주의의 일면을 찾기가 어렵다.

지난 2월4일 미 연방의회에서의 어색한 한 장면은 미국 정치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삽화로 남게 되었다. 새해 국정연설을 하는 그날 저녁, 535명의 상·하원 의원 전원과 사법부, 행정부의 주요 인사 및 펜타곤의 수뇌들이 참석한 하원 본회의장에서 미합중국 국가원수 트럼프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일면을 드러내었다. 의당 경의를 표해야 할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에게 무례를 표출했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여성 하원의장에게 복수와 증오심을 보여주려고 작심한 듯했다. 그녀를 무시하는 모습이 역력한 가운데 관례에 따라 연설문만 전달한 후 펠로시가 내민 손을 외면한 채 돌아섰다.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국정연설 석상에서 하원의장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대통령이 75분 동안 지난 3년간 미국 최우선주의를 실천한 자신의 업적을 열거할 때도, 이란의 군부실세를 제거한 당위성을 설파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할 때도 낸시 펠로시는 불쾌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다. 퇴장하는 대통령은 다시 한번 하원의장을 외면하면서 무례와 무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고, 펠로시는 트럼프의 연설문을 네 번에 걸쳐 찢어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분노로 화답했다. 200년 전이었으면 아마 두 사람은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서 참관인들을 옆에 두고 마주보고 섰을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보복의 극치를 보여주는 'Texas Republicans vs. Texas Democrats'란 말이 전해 오듯이 공화, 민주 양측의 치열한 경쟁과 정쟁은 영국의 장미전쟁 당시 요크가(家)와 랭카스터가 간의 알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매 연초 'State of the Union Address'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연두교서 발표 자리에서만큼은 초당적인 단합의 모습으로 미합중국의 힘과 정신을 전 세계에 과시해 왔다. 매년 1월말 또는 2월초에 목도되는 미 의사당에서의 국정연설 자리는 '뭉치는 것이 힘'(Coninucta valent) 이라는 고대인들의 속담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의회정치의 표상이 되어온 미국에서 미국의 10대들도 보기 민망한 장면이 비친다. 냉소와 적의가 충만한 정파주의가 새롭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트럼프의 공화당과 펠로시의 민주당 간에 11·3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자존심을 건 일전이 진행되고 있다. 탄핵 카드가 무위로 끝나면서 일견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민주당의 어떤 후보가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할 수 있을까. 패기로 무장한 젊은 후보와 연륜을 겸비한 노장들, 그리고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여성 상원의원이 다가오는 슈퍼 화요일(3.3)의 대회전을 향해 제각기 분투하고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