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
伊 비스콘티 감독 '음악 비중 높은' 영화로
코로나19로 이탈리아인 신음·절망감 높아
치유의 벗 '음악' 안 멈춘다면 삶 죽지않아


최승현 대사님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편안한 삶 대신 어려운 길을 택하였다. 독일인인 그가 나치 독일에 순응만 했어도 필명을 보장받고 안락한 여생을 누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유를 압살하자 저항했고, 대서양을 건너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노벨문학상 견장을 달고 있어서가 아니다. 양심에 따라 글을 쓰는 작가정신과 정치평론가로서의 기개 때문이다.

작품 '마(魔)의 산', '토니오 크뢰거' 등으로 유명한 그는 독특해 보이지만 깊은 함의를 담고 있는 소설도 적지 않게 내놓았다. 그 중 한 편이 1912년에 발표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독일 남부지역에 사는 어느 예술가가 물의 도시 베니스에 가서 우연히 어느 미소년을 보게 된 후 마음을 빼앗긴다. 나이가 들어가는 예술가는 레스토랑의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도, 해변가의 먼발치에서도 온전히 청순한 미소년 생각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그를 마음속으로만 흠모하다가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돌연 마지막 숨을 거둔다.

영화의 거장이 수없이 배출된 이탈리아에 루키노 비스콘티라는 감독이 있었다. 토마스 만의 작품을 애호하였던 그는 1971년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다. 까다롭지 않아 보이는 비스콘티는 주연 배우인 미소년 역을 맡을 신인 배우를 까다롭게 선정했다. 수많은 후보 중에 스웨덴의 10대 비외른 안드레센이란 남자가 발탁된다. 수려한 외모가 빛났던 스웨덴의 젊은 청년은 많은 연기가 필요 없었다. 그 영화는 기묘하게도 배우들의 대사보다 음악이 더 많았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카라얀은 오스트리아가 배출한 불멸의 작곡가 말러의 작품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를 지휘하고 있었다. 심해저같이 깊고 잔잔한 구스타프 말러의 음률이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내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아름다운 10대 소년을 사랑하게 된 나이든 예술가는 누구인가.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향해 달음질치는 늙어가는 소년의 마음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인간의 본성이었다. 객지에서였지만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는 그 예술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마지막 장면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소리없는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다. 다른 대륙, 여타 나라와 달리 유독 심각하다. 르네상스가 꽃피었던 이 나라는 지금 이 순간 피어 있는 꽃도 죽어가고 있다. 그 누구에게는 편안한 죽음이 오히려 꿈일지 모른다. 행복한 죽음이 그리운 희망일 수 있다. 북부지방 베니스와 밀라노는 물론 수도 로마와 남부의 나폴리까지 이탈리아인들은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절망하고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주 경로였던 그 나라 사람들은 중세를 상상하며 위안받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제 백발이 된 어느 노인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며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어느 젊은이는 아파트 안의 어느 공간에서 깊고 깊은 아다지에토의 선율에 지쳐가는 몸을 맡기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난해도 이탈리아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음악을 벗으로 생각하는 그들은 칸소네 한 구절로도, 아리아 한 곡으로도, 오늘 밤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가오는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이탈리아인의 삶은 죽지 않을 것이다. 비스콘티 감독은 '베니스의 죽음'을 창작하고 5년 후 자신이 만든 영화 속의 예술가처럼 세상과 멋진 작별을 고하였다. 그가 바라보았던 이 세상은 미소년의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이탈리아인 움베르토 에코도 4년 전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84년의 길지 않은 생을 뒤로 하고 영원 속으로 떠났다. '삶이 짧은 꿈의 그림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무대를 떠났다. 불후의 역작 '장미의 이름'이 오늘도 한 사람의 이탈리아인이었던 그를, 생각이 깊었던 그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