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인재 안타까운 희생
업체 공기 줄이려 무리한 시공
최저공사비 수주 저가 하도급 탓
다행히 소방공사 분리발주법 통과
덧붙여 '안전불감증' 먼저 척결을


한봉훈 수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한봉훈 수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8년 1월 7일 공사가 진행 중이던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레탄 발포작업으로 인해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면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불꽃은 작업장 내부 벽면과 천장에 도배된 우레탄폼을 태우며 번졌다. 우레탄폼이 타면서 내뿜은 유독가스는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난 4월29일 또 다른 이천 물류창고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더구나 이번 화재 사고는 지난 2008년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와 똑같은 유형이다. 여러 변수들이 많아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유증기를 발생시키는 우레탄폼 작업과 불꽃을 일으키는 용접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반복되는 무고한 희생 위에 '망우보뢰(亡牛補牢·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음)'의 뜻처럼 재발 방지를 위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건축법, 소방시설법 등 관련 법규를 강화하며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희생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일반적인 건설 공사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업은 '발주사-시공사-하도급-재하도급'의 4단계 건설공종을 거쳐 이윤을 남긴다. 시공사까지는 적절한 수익이 보장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밑으로 내려올수록 수익이 보장되긴 어렵다. 공사비용을 최저가로 제시한 곳이 사업을 수주하기 때문이다. 이에 수주를 맡은 하도급 업체들은 어떻게서든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등의 무리한 공종 강행이 이뤄진다. 이번 사고에서도 화재 원인으로 가능성이 높은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 작업이 한 곳에서 진행됐던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20여년 전부터 소방시설공사분리 발주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간 소방시설공사가 저가 하도급제도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공사 품질이 저하됐고, 이는 국민안전 확보에 족쇄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동안 통합발주로 진행하며 총 금액 대비 소방하도급액은 20~30%가 감소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에서 소방시설 분리발주 의무화 내용을 담은 '소방시설공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국민안전을 대폭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17년 5월 발의돼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된 뒤 3년째 계류 상태였으나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후 급물살을 타며 통과됐다.

이로써 전문 소방시설업자가 직접 발주해 저가 시공을 근절하고, 시공사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안전문화'가 그것이다. 반복된 인재의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우리 모두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업은 안전한 산업환경이 이익창출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일터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경시되는 문화를 척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 '화재(火災)'라는 사건이름 때문에 공사 현장에서도 화재 예방에만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화재 예방에만 신경을 쓴다고 해서 이런 사고를 막을 순 없다. 전반적인 건설현장의 안전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火災)'가 아닌 '이천 물류창고 폭발(暴發)'로 명명하고, 뼈저린 반성과 함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안전불감증을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2, 제3의 이천 물류창고 참사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봉훈 수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