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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도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인해 남북관계는 경색의 수준을 넘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한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남북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 등으로 이어졌던 2018년의 한반도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지금의 이 위기는 과거 어떤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질 것이다.

2018년 한반도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얼어붙어 있던 한반도의 봄을 기대하고 또 응원하였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10월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발언 등에 이어 작년 말 2020년 신년사를 대체한 전원회의 결정서에서도 북한은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은 지속되었다. 이후 최근 일부 시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반전되면서 6월 16일 오후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였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상황은 남북 모두가 '강대강'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연설에 대해 17일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여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단어들을 사용하며 비난했다. 같은 날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 군부대를 다시 전개하고 서해상 군사훈련을 부활시키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최대 성과로 꼽히는 9.19 남북군사합의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만약 개성과 금강산 지역에 전방 주력 부대가 재배치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과거 개성공단 일대는 2003년 공단 착공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군 2군단 예하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 등이 배치돼 있던 지역이다.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후방으로 배치됐던 북한군이 다시 전진배치 된다면 2003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총참모부 대변인은 또한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초소들을 다시 진출·전개할 것이라고 하여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거부할 것임을 밝혔다.

우리 정부 역시도 이러한 행위를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일이라고 보고,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제 당분간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한치 앞도 전망할 수 없는 '시계제로'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극단적 행동으로 도발한다면 우리 정부로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주변국들 역시 다시 한번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70년간 남북관계는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 4.27판문점 선언 등의 내용들만 살펴보면 한반도는 화해와 협력을 넘어 이미 공동의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며 통일에 대한 진일보한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늘 원점으로 돌아와 혹은 과거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역행하며 과거의 합의와 약속들은 묻혀 버렸다. 이러한 신뢰 없는 관계가 반복되자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도 타성에 젖어 '그럴 줄 알았어'라며 평화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갔다.

남북관계는 남북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중심을 잡고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더욱 쉽지 않다. 미국에게 한반도 문제나 남북관계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속에서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절실하게 평화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핵실험, 미사일 도발 등 우리는 긴장상태에서 평화롭지 못한 시간을 70년간 보내왔다.

6.25 전쟁 70주년이 곧 다가온다. 남과 북은 다시한번 다가온 '대화 없는 대결'의 시대를 조속히 끝내고, '대화 있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관계라는 것이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적이어야 하며, 특히 북한이라는 상대와 함께 평화라는 과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내에 인내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 지금까지 남북 간 화해의 과정을 거쳐 온 수차례의 순간들을 기억하자.

/권숙도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