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갈때면… 할아버지가
소몰고 밭갈이하던 소리가 그립다
그 모습은 내 어릴적 농촌풍경
기계로 대체, 요즘의 일상과 대조
쫓기듯 사는 현대인 삶 안타까워

변광옥1
변광옥 시인·수필가
고향인 시골을 내려갈 때면 어릴 적 할아버지가 소를 몰고 밭갈이하시던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구성진 목소리로 쟁기를 끌고 가는 황소를 몰며 밭을 가셨다. 황소는 철들은 아이처럼 올라서라면 올라서고 돌아가자면 돌아서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만 느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말을 잘 듣는 황소를 보고 우리 집 큰 일꾼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구성진 목소리를 어린 손자도 알아듣지만 황소도 알아들었던 것이다. 황소가 할아버지의 소리를 알아듣고 하루종일 밭을 갈던 모습이 내 어릴 적 우리의 농촌 모습이다. 마치 스위스의 초원에서 요들송을 부르며 양떼를 불러 모으는 모습과도 비교될 법한 목가적인 풍경이기에 지금도 그 모습이 생각날 때면 옛 농촌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할아버지와 황소의 모습은 어린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키워 주었다. 그런데 요즈음 농촌의 모습은 어떤가. 기계문명의 발달로 밭갈이할 때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일의 효율성으로 보면 트랙터가 황소로 밭갈이하는 것 보다 수십 배의 효율성이 있지만 사람과 가축이 어우러져 영혼을 주고받으며 일하는 모습은 사라진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문명의 이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집약사회인 4차산업의 시대로 탈바꿈해 오면서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기계문명에 이제는 종속되어 살아가게 된 것이다. 동료들 간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당신 삶에 문명의 이기가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물을 때면, 나는 서슴없이 '없다'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나의 소견이지만 지금 우리 문명의 발달이 여기에서 멈춰졌으면 좋겠다고 답한다. 옛날 짚신 신고 과거보러 수십 일간 걸어서 한양에 왔지만, 지금은 좋아진 교통편으로 세 시간이면 전국 어디서든 서울에 올 수 있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더 바라는 만큼 우리의 생활은 복잡하고 바쁘기만 한 것이다.

수년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 출근 시간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은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때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죠수아 벨이었다. 그는 그날 350만 달러짜리 명품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43분 동안 멋진 연주를 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1천여 명의 시민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단 1초도 그를 쳐다 보지도 않고 바쁘게 지나갔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단 7명만이 잠깐 지켜보았을 뿐이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들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이러한 현실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서울의 지하철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이 되면 인간 쓰나미처럼 들고나는 우리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제 우리도 영혼을 살찌우는 삶을 살아갈 때가 되었다. 빨리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면서 속도감에서 오는 긴장을 풀듯이 천천히, 조금 덜 벌더라도 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웃과도 사촌을 만들고 자연과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광옥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