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순신 관련 북콘서트' 는 성찰자리
이광수·이은상 책은 정견 투사·우상화 비평
그의 참모습은 인품·지도력 갖춘 軍전략가
공동체 운명과 동일… 비범하나 신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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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지난 7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북콘서트 '이순신을 찾아서'는 역사적 영웅의 서사화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자리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위기 속이라 영웅 서사에 대한 논의가 더 뜻깊었다. '이순신을 찾아서'는 문학평론가 최원식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순신 서사학이다. 이 책은 단재 신채호 구보 박태원을 비롯한 춘원 이광수, 환산 이윤재, 노산 이은상, 김지하, 김탁환, 김훈 등의 국내 작가들이 남긴 다양한 이순신 서사 텍스트를 평가한 비평서이다. 최원식 교수는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은 조선의 백성과 관료는 물론 군주도 시기심과 야심 때문에 충무공을 오해하고 방해하는 우매함 혹은 악의 화신으로 과장하였으며, 이순신은 부패한 관료들 틈에서 홀로 고투하는 인물로 단순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광수의 '이순신'은 결국 조선 망국의 필연성과 춘원 자신이 '민족개조론'에서 친일로 나간 '외로운' 선택을 방증하는 아전인수형 전기소설로 떨어졌다. 저자는 또 노산 이은상의 경우 이순신을 거룩한 우상으로 조작하고 조작된 우상은 다시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서사물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웅을 이상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은 사실을 단순화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적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안이한 글쓰기이다. 이순신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유성룡의 천거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불리한 전세에서 조선수군으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지상 육군의 배후를 위협함으로써 일본군의 수륙병진전략을 타격하여 전세를 반전시켰다. 조정의 반대와 온갖 난관에도 제해권장악 전략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 냉정한 군사전략가였다. 한편 이순신은 "군율을 분명히 하고 사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꺼이 따랐다"(明紀律 愛士卒 人皆樂附)는 실록의 기록처럼 병사와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인간적인 군사지도자였다. 궤멸된 수군의 전투력을 단시일에 복원하고 병사들이 목숨을 던져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은 그의 따뜻한 인품과 지도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이순신의 다른 위기관리능력을 제시했다. 이순신은 군수물자를 스스로 해결하여 전투력을 높이는 한편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 주었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통제사라는 지위만 부여하고 전쟁물자를 지원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소금을 구울 수 있도록 해변의 땅을 요구하여 조정의 허락을 얻었다. 큰솥을 걸어 구어낸 소금으로 수만섬의 군량미를 스스로 비축했다. 왜군의 노략질과 조선군의 군량미 징수에 지친 삼남지방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고 피폐한 경제에도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순신은 전장에 있으면서도 복잡한 조정과 외교적 갈등을 고려하면서 현실을 타개하는 신중하고 세심한 정치가였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서도 공인(工人)을 모아 부채 등을 만들어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의아해 했지만, 사사로이 이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두려워해서였다. 이익은 '두예와 이순신'이란 글에서 촉박한 전란의 와중에 부채를 만들어야 했던 안팎의 사정을 생각하면 천고에까지 지사들의 눈물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거듭 탄식했다.

역사적 영웅들은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과 동일시되거나 강하게 연관된 존재이다. 그런데 역사적 영웅에다 작가의 정견을 투사해 넣은 이광수, 박정희 영웅화 도구로 이순신을 우상화한 이은상의 경우는 이순신과 서사의 픽션을 그저 빌려왔을 뿐이다. 이순신 서사는 아직도 미완인 셈이다. 위기의 시대는 영웅을 대망한다. 영웅은 비범하지만 그렇다고 초인이나 신이 아니다. 전쟁 영웅 이순신이 오히려 병사들과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따뜻한 소통형 지도자였으며 병사들의 지혜와 지지에 힘입어 위기를 반전시킨 영웅이라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겠다.

/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