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 '한국근현대 23인 명가전'
먹하나로 서양 앞지른 그들의 외길 한눈에
특히 손마비 극복한 인천 출신 검여 유희강
독보적 필세 개척 동정 박세림 작품 '감동'


김학균 시인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하늘이 없는 것처럼 긴 장마에 미루고 미룬 서울행, 눈 뜬 아침에 솔깃 귀를 채우는 매미 소리가 반갑기 그지없다. 소식 없이 지냈던 죽마고우를 만나러 가는 만큼이나 반가운,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 근·현대 서예 23인 명가전'.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질곡의 세월을 살아가며 서예에 천착한 23인의 작품을 보며 서예는 '느림의 미학'이고 '성찰의 예술'임을 또다시 느낀다.

너나 없이 가난한 시기, 우리는 서예와 가까이 살았다. 서재 또는 대청마루에 작가 불문 서예 작품 한두 점은 걸어두고 산 세월이 있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일상이 바뀌며 아날로그 시대가 디지털 시대로 변모하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예측불허의 시대에 우리는 잊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 서예가 그중 하나로 상실된 기억이 아닌가 한다. 그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의식을 찾아볼 전시다.

입추 지나 말복, 사람들은 복달임한다고 보양식 타령이지만 옛 사람들(선비)은 여름을 나며 소하기(消夏記·여름 더위를 지내는 기록)를 남겼다. 서당과 마을의 정자에 모여서, 쓴 작품을 들고 나와 돌려보며 무더위를 식히며 나는 소회(評)를 모은 기록이다. 나의 여름 복달임은 바로 이 전시로 보양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녹아있는 혼을 한글 전서(篆書)로 쓴 소전 손재행의 독창미 넘치는 작품에서부터 광개토대왕비의 웅혼한 기백과 한민족의 미감이 훈민정음 글자꼴에 그대로 담아 혼을 불러내는 여초 김응현의 작품 또한 눈이 부시다. 작품마다 기와 혼이 살아 생명력이 넘칠 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내내 정신을 한군데 모으지 못하는 어지럼증을 부른다. 한자 문화권의 사의화(寫意畵·마음을 그린 그림)는 먹 하나로 서양을 앞지른 그들의 '서예 외길' 감동이다. 조선 궁녀들의 한을 한 획, 한 획에 삭여 산골 샘물처럼 쓴 청정한 필치의 한글서예, 궁체의 매력과 맛이 진정 살아 있다.

그런데 유독 긴 시간을 머물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인천 사람 '검여 유희강', 그리고 '동정 박세림'의 작품이 발을 묶는다. 무량청정(無量淸淨·한없이 맑고 투명한 땅)의 작품 속에서 흘러내린 따뜻하고 맑은 정신, 그 속에는 힘이 먹 속에 숨어 꿈틀대고 있었다.

인천 서구 시천동에서 태어나 4세 때 서예에 입문, 1937년 명륜전문학원을 졸업하여 중국에서 금석학과 서양화를 연구한 뒤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검여 유희강은 웅장하고 중후한 필획으로 국전의 최고상(문교부장관상 2회)과 서예부 심사위원을 5년간 역임했다. 1968년 뇌출혈로 오른손 마비가 와 좌수서(左手書)를 쓴 인간 승리의 예술을 펼친 검여는 인천이 낳은 국필(國筆)이다.

학처럼 고고하면서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한 서예가 동정 박세림은 해(楷)·행(行)·초(草)서의 독자적 풍모를 개척했다.

행서에서 추사를 수용하려 절차탁마했던 동정은 인천 중구 내동에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집안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1939년 인천해성중학을 거쳐 한학과 서예에 정진, 1947년 대동서예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서예는 사람과 같다)의 정신으로 매진한 동정은 국전의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필세가 왕희지에 버금가는 독보적인 진경을 보여준 작가다. 경기예총 회장을 역임하며 '지방예술이 곧 대한민국의 예술'이란 탁견을 실천에 옮긴 예술인이다.

한 시대를 엮은 기라성 같은 23인의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하는 호사, 다시 없을 기회가 아닌가싶다. 인천에서 이런 전시 언제쯤 열 수 있을까. 느림의 미학, 성찰의 예술, 서예를 우리 곁에 늘 두고 살자.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