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당 1대꼴로 차 소유했지만
운전습관은 여전히 후진국 행태
작년 프랑스 파리 방문 관광 경험
대부분 CCTV·블랙박스도 없어
그만큼 국민 스스로 법규 잘 지켜


경기도 안전관리실 서기관 박원철
박원철 경기도 안전관리실 서기관
"원칙을 지키면 바보 되는 게 한국 도로다."

얼마 전 지인이 운전 중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며 이렇게 토로했다.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면 옆 차가 양보를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빠르게 가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눈치를 보고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깜빡이를 안 켜고 차선을 바꾸는 게 낫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 대수는 이미 2천368만대를 넘어섰다. 2.1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이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그러나 운전습관은 여전히 후진국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좌우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끼어들기를 밥 먹듯 하는 운전자가 부지기수다(범칙금 3만원). 추월 차선을 주행 차선으로 아는지 추월 차선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다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몰상식한 운전자도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과속, 신호위반, 난폭운전, 곡예운전, 그리고 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상향등까지 깜빡거리며 위협 운전을 일삼는 '조폭 운전자'도 흔하다.

주·정차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회전하는 모퉁이, 건널목 위, 소화전 앞에 주·정차 금지 팻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주·정차를 해 댄다(범칙금 8만원). 이를 두고 '약탈적 교통문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작년 9월 프랑스 공기업에서 일하는 딸을 만나러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차를 빌려 외곽 고속도로를 2시간여 달려 유명 관광지를 다녀오면서 프랑스 교통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시내 도로가 자전거 도로와 잘 구분돼 있고, 건널목은 모두 보행자 우선이며 난폭운전과 차량 클랙슨(경적) 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 곳곳에 과속 신호위반 CCTV도 없었고, 대부분 승용차에도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궁금해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CCTV와 차량 블랙박스가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교통법규를 스스로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 원인의 대부분인 82%가 안전운전 불이행, 신호위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등 기초법규위반 및 부주의에 의한 안전불감증이다. 보통 깜빡이로 부르는 방향지시등은 도로 위 운전자들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내 차가 가려는 방향을 미리 주위에 알려 원활한 차량흐름을 돕거나 사고를 방지하고, 다른 운전자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2016∼2018년 경찰청이 접수한 방향지시등 미점등 신고는 총 15만8천762건으로 같은 기간 공익신고(총 91만7천173건)의 17.3%에 달한다.

또 난폭, 보복운전은 도로 위 모든 운전자에게 큰 위협이 되는 범죄행위다. 난폭운전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보복운전을 하거나, 상대방의 보복운전에 맞대응해 똑같이 보복운전을 한다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더욱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방향지시등을 켜는 등 배려하는 운전습관이 필요하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 시민답게 스스로 교통법규를 철저히 준수해 차량보다 보행자가 먼저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선진 교통문화 개선운동을 펼쳐 국민안전을 확보할 때이다. 그래야 '원칙을 지키면 바보 되는 도로'가 아니라 '원칙을 지켜 모두가 안전한 도로'가 될 수 있다.

/박원철 경기도 안전관리실 서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