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젊은 시절 고단한 삶
외국인 근로자들 애환 등 접하면
'가르친다'라기 보다 되레 배워
지역사회 위한 값진 경험 전파
100세 시대 계속 이어졌으면…

김한섭 국장
김한섭 경기대 특임교수·한국문협경기광주지회장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텃밭의 채소와 나무들이 정답게 나를 반겨준다. 텃밭과 울타리 주변에는 뽕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등 꽤 많은 나무들이 있어 참새와 까치, 비둘기까지 찾아와 지저귀곤 한다. 30평 정도 되는 마당 한쪽에 5평 남짓의 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등 채소를 심어 먹고, 가을이면 무와 배추로 김장을 담그니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김장철이면 딸네 가족이 찾아와 함께 정성을 다해 김치를 담그면 맛은 세배가 된다.

퇴직 후 고향인 광주 퇴촌에서의 인생 2모작의 삶.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고향의 채취를 아름다운 자연과 만끽하며 지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40여년 간의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됐으니, '귀농'이 아닌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으로의 '귀향'이다. 그리 빛나는 일상은 아니더라도 편안한 시간에 친구와 약속을 할 수 있고, 아침 일찍 출근 걱정을 하지 않으니 편해서 더 좋다. 평생 공직에 있었기에 언제 비상이 걸릴지 모르는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 또한 퇴직 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매주 목요일이면 28개월 된 외손자를 보러가는 과분한 호사도 누리며 살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일이다. 단순히 문자나 전화를 주고받는 기능밖에 알지 못해 관내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강좌에 등록해 스마트폰 사용법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함께 수강하는 85세 되신 할머니께 스마트폰을 배우는 이유를 물었더니,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지요"라고 하시면서 꾸부정한 어깨를 뒤로 젖히며 겸연쩍어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 제1편에서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생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임을 설파한 공자의 현명함과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는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생존을 위해서는 평생 배우고 익히는 삶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배우는 일'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 또한 은퇴 후의 삶이 무료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모교인 경기대에서 후배들에게 한국행정론 강의를 통해 어린 시절 꿈꿔왔던 선생님의 꿈을 이뤘다. 가정 형편상 고교 졸업 후 공직에 입문한 이래 배움에 목말랐기에 야간대학을 다녔고, 국비 유학으로 일본에서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고교시절과 유학시절 배우고 터득한 일어를 관내 노인복지관과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어강사로 활동하며 가르치는 것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은퇴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코로나19로 대면강의가 없는 요즈음, "선생님, 빨리 뵙고 싶어요"라며 안부전화를 받을 때면 가르치는 일의 보람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하루빨리 진정돼 어르신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길 기원해본다. 그밖에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검정고시반 강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강사 등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한 강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고단한 이야기, 외국인 근로자들의 외국생활 애환 등을 접하면서 '가르친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듯싶다. 이를테면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평생 배우고 익히는 것'을 동시에 경험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삶, 꿩 먹고 알 먹는 게 아닐까? 공직생활에서 터득한 다양하고 생생한 현장 경험을 그대로 묻어 버리지 말고 지역사회를 위해 값지게 사용될 수 있도록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은퇴 공직자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임에 틀림없다. 인생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는 요즘, 앞으로의 삶은 이랬으면 좋겠다.

배우고 익히면 때로는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김한섭 경기대 특임교수·한국문협경기광주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