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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징집에 응해 전장에서 일기를 기록한 고 유정수 씨가 남긴 당시 신분증과 일기장 등 유품. 2020.6.15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軍 비위생환경서 징집 당해 감염
1951년 귀향 직후 이례적인 확산
"국가가 만든 사회적 질병" 지적

한국전쟁 당시 징집된 국민방위군(11월 25일자 1면 보도=70년 잊힌 국민방위군…사회 곳곳 조명 움직임)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를 전국적으로 퍼뜨린 원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복조차 지급 받지 못한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징집당했기에 발생한 일로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과실이 또 한 번 증명된 것이다.

25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이임하 교수에 따르면 급성 발열성 질환인 발진티푸스는 지난 1951년 모두 3만2천211건이 발생했다. 직전인 1950년 2천523건, 직후인 1952년 923건이 발생한 것과 비교해 비정상적으로 1951년 발생 빈도가 높다.

1951년 한 해 동안 발진티푸스로 숨졌다고 확인된 사례만 5천667명이나 된다.

1951년은 특히 3월과 4월에 1만건 이상이 발생해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바로 이 시기의 이상 발생은 국민방위군의 이동과 연관이 있다.

경인일보가 보도한 고 유정수씨의 일기에 따르면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징집돼 1951년 초 경남 지역 등에 마련된 교육대에 도착한다. 그 뒤 3월부터는 국민방위군들이 다시 귀향하게 되는데, 발진티푸스의 창궐과 국민방위군의 귀향 시기가 겹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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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식(91)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이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사진(액자 왼쪽·당시 21세)을 보여주며 국민방위군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고 있다. 2020.6.18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당시 주한 유엔 민간원조 사령부(UNCACK)는 국민방위군 교육대에 발진티푸스가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예방접종과 DDT(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농약)를 통해 전염병 근절에 나선다.

발진티푸스는 불결한 환경에서 생활할 때 나타나는 전염병으로 1951년을 제외하고 한국 역사상 이처럼 발진티푸스가 창궐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방위군에 동원된 국민은 군대에서 병을 얻고, 이를 전국으로 퍼뜨린 원인이 됐다.

당시 UNCACK는 국민방위군 불합격자(귀향자) 중 치료된 환자는 1만명 가량이고 입원한 환자는 50만명 가량이며 그 중 4%가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대로라면 2만명 가량의 국민방위군 징집자가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셈이 된다.

이 교수는 "매년 천 명도 안 되는 국민만 감염되던 발진티푸스가 이 시기(1951년)엔 기록적인 감염 수를 보였다. 잘 씻지 않고 모여서 잠을 자면 아주 쉽게 퍼지는 병이다. 국민방위군은 국가가 자신들에게 군복을 지급해 주고, 머물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징집에 응했다가 옷조차 받지 못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내몰렸다. 국가가 만들어 낸 '사회적 질병'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