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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따먹으며 왔다 //

또옥, 또옥, 손으로 훑은 꽃들로

광주리를 채우고, 사흘도

못 갈 향기에 취해 여기까지 왔다 //

치명적으로 다치지 않고

허기도 없이 말의 꽃을 꺾었다 //

시든 나무들은 말한다

어떤 황홀함도, 어떤 비참함도

다시 불러올 수가 없다고 //

뿌리를 드러낸 나무 앞에

며칠째 앉아 있다

헛뿌리처럼 남아 있는 몇 마디가 웅성거리고

그 앞을 지나는 발바닥이 아프다 //

어떤 새도 저 잿빛 나무에 앉지 않는다

나희덕(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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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꽃이 떨어지기 쉬운 것처럼 말도 더럽혀지기 쉽다. 바닥에 떨어진 꽃을 붙일 수 없듯이 한번 뱉은 말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말은 소통의 기능보다 더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했던 말을 번복하더라도 그것은 이전에 한 말이 아니며 되풀이할수록 왜곡될 뿐이다. 그만큼 세상을 사는 우리는 말을 통해 생각하고 말로써 움직이며 말로 살아가는데 말처럼 중요한 건 없다. 때로는 '또옥, 또옥, 손으로' 꽃을 따듯 한마디로 따낸 말이 '치명적으로' 흥망성쇠를 가늠하기도 한다. 이처럼 '말의 꽃'은 얼마나 쉬우면서 어려운가. '어떤 황홀함도, 어떤 비참함도 다시 불러올 수가 없다고' 말하는 모든 꽃이 '시든 나무'를 보라. '꽃의 말' 때문에 시들어갈 '웅성거리는 헛뿌리' 하나 떠오르지 않던가. 그 누구도 어떤 진리도 헛뿌리에서 태어나고 사라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