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내 요양병원 284곳의 84%인 236곳이 입주건물의 4층 이상에서 영업 중이라고 한다.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요양병원의 특성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화재 발생 시 환자는 물론 의료인들의 대피로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의하면 병·의원은 3층 이상에 입원실을 둘 수 없다. 화재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대피가 쉽지 않은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규제이다.

실제로 고령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한 요양병원 화재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장성군에서 발생한 효사랑요양병원 화재사고는 신속한 진화작업으로 24분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고령환자와 의료인 등 21명이 사망하는 대형 인명피해를 남겼다. 2019년 김포의 한 요양병원 화재사고 때는 입원환자 2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을 당했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전국의 요양병원, 요양원 4천600곳을 조사한 결과 79%가 3층 이상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했었다. 행안부의 현장 조사는 같은 해 1월 47명의 사망자와 11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현장조사였다. 세종병원 화재는 1층 응급실에서 발생했지만 순식간에 번진 유독가스에 갇힌 환자들은 대피하지 못했다. 별관에서 운영했던 요양병원 환자들은 그나마 사망사고를 면했다.

문제는 의료법의 고층 병상 금지 규제가 사실상 단서조항으로 사문화된 점이다. 건축법상 철근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은 내화구조 건물일 경우엔 3층 이상 입원실 설치에 제한이 없는 것이다. 3층 이상 건물은 내화구조 건축을 의무화한 건축법을 감안하면, 3층 이하 입원실 규제는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없느니만 못한 안전규제로 3층 이상에 개업하는 요양병원은 계속 늘고 있다. 2019년 도내 요양병원 260여 곳 중 4층 이상에 입주한 곳은 절반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전체의 87%로 늘었다. 요양수요 확대에 따라 새로 개업하는 민간 요양병원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고층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고층건물들이 화재 시 유독가스를 대량 발생시키는 드라이비트 공법을 적용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화재 취약성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정부는 사문화된 의료법의 환자 안전확보 규제를 대체할 수 있는 요양원, 요양시설 화재안전 대책을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