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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방송 안 탔던 나의 단골집
이젠 알려졌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게돼 괜찮다
다만 사장님이 지치지않길 바랄뿐
손맛 처음보는 외지인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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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나만 알고 아껴두고 싶은 단골집이 TV에 나와버렸다. 단골들이 가도 사장님이 너무 바빠서 인사를 못 할 정도로 손님이 밀려들고 있다고 했다. 오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문을 두드려대고,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임시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하는 상황이라니! 고사 끝에 방송 출연을 수락한 사장님은 방송 나가기 전날 링거주사를 맞고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역대 최고 매출을 찍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며칠 만에 짬이 조금 난다는 사장님과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지나가는 사람마다 "방송 잘 봤다"며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방송의 힘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였다.

사장님이 "단골손님들이 가족 같고, 가족 같은 분들과 잘 지내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멘트는 편집되었단다. 방송작가 입장에서는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단골손님 중의 한 명인 나로서는 꽤 소중한 말이었다. 방송 대신 육성으로 직접 들어서 더 그랬다. 다만 방송 직후부터 발 빠르게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는 외지 손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머쓱해졌다.

며칠 전 의정부에서는 내가 바로 단골집 같은 유명 맛집에 줄 서 있는 외지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서점에서 파는 유명한 약과라고 했다. 서점에서 책보다 약과가 더 잘 팔린다는 말을 듣고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인스타에서 #파지약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생이 꽂힌 거다.

의정부라니, 아무리 약과가 맛있다고 해도 그 먼 곳을 처음부터 갈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과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픽업, 인스타 디엠, 전화, 문자 주문 모두 마감이었다. 택배 주문 역시 마감된 지 오래라 두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동생이 꼭 먹어보고 싶다고, 가보자는 말에 그냥 그러기로 했다. 내심 그 유명한 약과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 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의정부에 가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너무 늦게 가면 그마저도 마감될 것 같아 이르다 싶게 의정부로 출발했다. 그 집은 주택가 골목에 숨어있었는데 끊임없이 차량들이 들락날락 중이었다. 오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한 가지 종류는 바로 앞에서 다 팔려버렸다. 겨우 득템에 성공하자마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약과를 베어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구입에 성공한 덕인지, 훌륭한 맛이기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약과는 달콤했고 가격도 저렴했다.

의정부에 왔으니 부대찌개를 먹지 않고 갈 수 없다 싶어서 부대찌개도 먹기로 했다. 폭풍 검색 끝에 부대찌개 골목 내에서도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집으로 들어갔고, 부대찌개 역시 좀 더 맛있었다. 막상 방문해서 가격과 메뉴, 확보한 주차장 면적까지 고만고만한 부대찌개 골목에 늘어선 가게들을 보니 검색으로 보낸 시간이 아까워진 것도 사실이다. 음식의 맛이란 함께 간 사람, 그날의 날씨 등 음식 자체의 맛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닌데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은 다른 사람의 리뷰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 싶어졌기 때문이다.

의정부까지 가서 약과 사고 부대찌개 먹고 왔으니 기름값이 더 나오는 비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동생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걸 먹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들의 맛집 타령은 사실 "내 돈과 시간을 들여 먹는 음식이 기왕이면 맛있어야 한다"는 효율 중심의 자본주의적인 논리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걸 먹어보겠다고 먼 곳까지 가는 정성은 사실 함께 가는 누군가와 추억을 쌓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유명한 전국구 맛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하지만 말 그대로 '찐'인 동네 고수의 집이다.

검색했을 때 리뷰가 많으면 광고일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지는 바이럴마케팅 홍수의 시대. 인터넷에도 방송에도 나오지 않아 더 좋았던 나의 단골집은 이제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렸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만 너무 사람이 많이 몰려서 사장님이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 같은 단골도, 사장님의 손맛을 처음 보는 외지인도 모두 행복할 수 있게.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