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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소위 '직장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일하는 자'로서 시간을 보낸 지 벌써 11개월이 되었다. 당시 나는 '자유로이 일하는 자'가 된다면 '자유'에 방점을 두고자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의미의 '업(業')은 '직장인'이 아니어도 수행해야 할 터이니, 나는 사무실이 없는 자의 공간, 즉 집에서 수행하는 가사노동에서부터 땅을 가진 이웃의 각종 채소, 과일과 다양한 식물 가꾸기에 간헐적 노동 보태기, 그리고 세 치 혀로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지금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원하는 것을 찾아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쉽게도 '글쎄요'라고 말할 것 같다.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나를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서, 혹은 그동안의 습관적인 나를 놓아버리기 위해 '집단 속의 나'에서 '개인으로서의 나'의 시간을 원했지만, 선택한 시기는 사람을 만나기도, 여행하기도 어려웠던 '코로나19'로 인한 지구적 팬데믹(Pandemic) 시절이었다. 또한 속도와 정보량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소식을 잘도 배달해 주었다.

상기해 보면 2020년 1월20일은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날이다. 당시 정부는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경계'로, 602명이 발생한 2월23일에 '심각'으로 상향하였다. 3월1일 기준 확진자 수는 51개국 8만3천여명이었다. 2020년 3월18일, 정부는 코로나 대응을 위한 '위기관리대책회의'를 통해 타격이 큰 업종에 대해 긴급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문화계를 예로 들면, 공연예술분야의 예술단체에 대한 공연제작비 지원, 관람료 지원,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중 '코로나19 특별융자'를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등의 조처가 있었다. 이후 우리는 2차, 3차의 확진자 폭발을 겪었고, 그에 따른 정부의 단계별 조처를 감수하면서 '언젠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일상대화의 단골 소재로 삼았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코로나19'의 종식이 아닌, 나흘 이상 1천명을 상회하는 확진자가 발생, 서울과 경기도는 2021년 7월12일부터 25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동안 지구촌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백신이 개발되면 여행이 가능할 것', '집단면역으로 항체가 형성되면 감기처럼 여겨지는 날이 곧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인류의 대응력은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나 습관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체감하면서, 동시에 기술 발전을 통해 다중집합이나 대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가상공간의 현실 세계로의 확장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예컨대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은 게임, 놀이, 소셜네트워크 등의 플랫폼에 적용되고 있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변화를 일상에서 좋든 싫든 담아내고 있다.

'자발적 실업'의 시간 동안 나는 '코로나19'의 시절에 '나와 다른 삶의 속도를 굳이 따라잡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읽은 책 중에 박경남 교수의 유한준 평전 '저마다의 길'이 눈에 띄었다. '각자 자신의 길을 가라'는 뜻을 담은 '각도기도론(各道其道論)'의 삶을 산 18세기 지식인 유한준의 일생을 만나니, 21세기의 '새로운 방식의 삶'을 구하는 나에게 무척 큰 위안이 되었다. '코로나19'를 종식할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 의학적인 설루션을 찾더라도 인류의 삶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정체 모를 세균과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단박에 팬데믹 상황이 사라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기도문을 외우기보다, 극한의 생산력과 산업적 성장의 고도화가 가져다준 기후 위기의 문제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간 습관을 다시 바라보고, 현대 문명 경로의 성찰과 남은 인생에 있어서 다른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하는, '저마다의 길' 중의 하나인 '나 자신의 길'을 가는 데 더 시간을 보내면서 살고 싶다.

/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