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덴만 해역에 파병됐던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이 임무수행을 포기하고 전원 본국 후송길에 올랐다. 주둔지격인 문무대왕함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합참이 지난 15일 청해부대 코로나 감염사실을 최초로 공개했을 때 6명이던 확진자가 며칠 사이 40여명으로 늘어나더니, 후송 작전이 시작된 19일에는 247명으로 폭증했다. 청해부대 34진 총원 301명의 82%이다. 한 단위부대의 전력이 일시에 무력화된 것이다. 참담하다 못해 분노가 솟구친다.
군부대가 감염병 취약시설임은 지난 1년 반 동안 겪어온 팬데믹 상황에서 수없이 검증된 상식이다. 집단 격리 공간이 뚫리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후방 부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부대 전체를 격리한 경험이 생생하다. 특히 완벽한 격리 시설인 해군 함정은 떠다니는 배양접시나 마찬가지다. 초군사강대국인 미국이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에서 1천여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바람에 해양작전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우리도 지난 4월 해군 상륙함에서 수십명의 확진자가 쏟아졌다.
생각있는 정부라면 백신 접종 1순위 대상에 군 장병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미군은 이런 상식에 따라 주한미군은 물론 카투사와 미군부대 한국인 군무원까지 일괄적으로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정부와 군 당국은 청해부대 34진 파병 당시 백신이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백신 확보 뒤에도 파병 장병들에게 백신 공급을 못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 도입 백신의 해외 반출 금지 계약, 백신 공급에 따른 파병 지역 국가들과의 복잡한 협력 절차 등 그때그때 내놓은 변명들이 하나같이 구차했다.
결국 청해부대 백신 접종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 결과 한 단위부대의 전력이 무장해제됐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대한민국 영토인 문무대왕함에서 복무하는 청해부대에 백신 공급을 안 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명백한 직무 유기이다.
일각에서는 감염 초기 대응 미숙과 보고 체계를 시비하면서 책임의 일부를 청해부대에 미루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다. 파병 부대는 국가의 명령대로 주둔 임무 수행에 전념하면 된다. 부대 안전을 위한 백신 보급은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
[사설] 코로나19에 무장해제 당한 청해부대
입력 2021-07-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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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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