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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는 중수 기록 발견으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세간의 주목
급경사지 사찰터 폭넓게 대지 조성
늙은 건물·탑·소나무 모두 신 일지도
세월을 입은 것들에 기도·경이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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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여행가
기록을 남긴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안동 봉정사(鳳停寺)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극락전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1363년에 지붕을 중수했다는 묵서가 발견되면서부터이다. 목조건물이 약 150년을 주기로 중수한다고 봤을 때 극락전은 적어도 1200년대 초반에 지은 건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그것을 계기로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지고 있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라는 명성은 봉정사 극락전에 양보하게 되었다. 이 고찰의 건축적 가치는 극락전뿐만 아니라 대웅전, 고금당, 화엄강당은 각각 한 시대를 대표하는 형식을 고루 갖춘 건축물로서 봉정사 그 전체가 목구조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중요한 유산들이다.

봉정사를 방문해본 사람은 알 테지만, 가람이 자리 잡은 천등산 기슭은 급경사지여서 사찰의 터를 깊이보다 폭이 넓도록 대지를 조성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찰 입구에서 만세루 건물을 올려다보면 그 크기와 위용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급경사가 주는 효과도 한몫 했지 싶다. 그러나 여느 사찰과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역시 사찰의 건물배치도다. 대웅전·극락전 ·화엄강당·고금당·만세루·요사채·삼성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절터가 좁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근래에 들어 새로 지은 요사채는 아래쪽으로 공간을 분리해서 건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봉정사를 둘러보며 늙은 건축물, 늙은 탑, 늙은 소나무…. 늙었거나 오래된, 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하늘은 신의 자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냥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첫 계획을 다소 수정하여 낮에는 폐사지와 탑을 순례하고, 이번에 꼭 들러보고 싶었던 봉정사(안동)는 해가 기우는 시간을 기다려 찾아갔다. 내가 찾아갔을 땐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어느덧 상사화는 지고 사랑스러운 무릇이 반겨주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자 만세루를 떠받들고 있는 여섯 개의 늙은 기둥들, 그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여름 오후의 빛, 눈부셔라, 아름다워라, 저 빛 보여주시려고 그분께서 나를 이 먼 곳까지 부르셨구나, 그랬구나, 홀로 감탄하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맘이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번 여행에서 매우 인상적인 한 컷 풍경을 묻는다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진 천등산 봉정사 극락전(極樂殿)을 들 수 있겠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듯하나 오래되어 낡고 늙은 저것이 신의 품격을 지녔구나, 잔잔히 스며드는 감격을 곱씹으며 얼마나 그 자리를 서성거렸던가. 아래로 내려와 만세루 하부 기둥을 사이에 두고 동쪽 축대 밑에 서서 서편 역광의 빛을 보고 있노라니 건물을 받들고 있는 저 단순한 기둥이 듬직해 보여 좋았지만 이 고찰에서 없어선 안 될 위와 아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해주는 회랑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했다. 내면의 힘을 기르면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초연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무를 벌채하여 오랜 시간 말리고 다듬어 이렇게 멋진 건축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해와 습기와 통풍 그리고 주변 환경은 물론 지난한 보살핌이 필요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세월을 입은 오래된 것들에게 경이라는 단어를 헌사하는 이유도 그것일 테고.

'늙은 흙집의 짐을 다 뺐다'는 조금 아픈 친구를 위해 오래된 극락전 앞 늙은 탑을 돌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뿐이었다. 나의 기도는 그렇게 간절히 부처님 전에 그의 존재를 의탁하며 이름을 반복 호명해 주는 것, 그러다 보니 해도 기울고 더위도 한풀 꺾여 사찰에 들 때의 피로감은 사라지고 변심한 애인처럼 나는 저잣거리로 나오고 싶지 않았으니, 그러나 아픈 그녀도 갈길 먼 나도 그분께서 함께해 주시겠지, 잠시 그렇게라도 마음 맡길 곳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사찰을 나오는데 봉정사 앞뜰에 허리 굽은 소나무 한 그루, 그 어른께서 또 나를 부르신다. 나무, 그분도 가끔은 나처럼 외로우신가 보다.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