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장애인시설을 폐쇄해 장애인들의 사회적 자립을 이룬다는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오는 8월 정부의 탈시설자립지원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이를 지지하는 장애인단체와 반대하는 중증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상반된 주장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장애인 탈시설화는 국가가 책임지고 장애인들을 독립된 공간에서 자립시키는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다. 스웨덴 등 복지선진국의 시설 없는 장애인 복지정책이 원형이다. 완벽하게 실현되면 더 바랄 게 없는 최종적인 장애인 대책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같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몰지각한 시설 운영자의 장애인 인권유린이 발생할 수 없다.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정책 방향이다.

문제는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의 이상이 현실과 충돌하는 데 있다. 장애인 시설의 폐쇄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최중증장애인들과 가족들에게 시설 자체가 복지라는 반론을 무시할 수 없다. 중증발달장애인 가족들이 탈시설화를 반대하며 폭염 속에서 시위를 벌이는 배경이다. 이들은 정부의 탈시설화 정책으로 장애인 시설 신설이 막히고 기존시설의 정원이 축소되면서,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반발한다. 국가가 장애인 자립을 완벽하게 보장할 예산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 탈시설화를 하든가, 아니면 현재의 시설 수용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탈시설 시범사업 결과는 천문학적 예산 없이 정책 실행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정부의 탈시설지원로드맵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범사업이 핵심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의 취지엔 전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예산과 제도 없이 말로만 앞세우는 정책은 없느니만 못할 뿐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정부의 로드맵이 부실할까 우려하고, 중증장애인 부모들은 정부의 로드맵으로 장애인 자녀의 돌봄체계가 망가지고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질까 걱정한다.

복지선진국이 수십년에 걸쳐 이룩한 탈시설화 정책을 정권의 임기 내에 완결할 수 없다. 정부는 로드맵 발표로 성과를 보이는데 급급할 일이 아니다. 정책의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조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애인 단체는 물론 장애인 부모, 장애인시설 관계자 등 당사자 전체가 참여하는 숙의 과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