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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꽃 잔치가 어지간히 끝나갈 무렵이다



석간수에 비치는 햇살처럼 눈부신 하얀 피부

어둔 밤 별 같이 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부른다



철옹성 같이 굳은 입술로 인사말 나누자마자

바닷물처럼 넉넉한 향기는 온 우주를 삼킬 듯하다



세상의 오물 모두 다 품어내고도 철철 남을

백설도 울고 갈 옥양목 닮은 순백이라니



태산목 온 정신 갖고는 만날 수 없는 늦봄의 축복

최한선(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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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대체로 사물의 이름은 그 외모에 따라서 표식되며 식별한다. 6~7월에 꽃을 피는 목련과 '태산목'은 생김새가 우람하고 꽃과 잎이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위엄'이라는 꽃말까지 생길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고 엄숙한 자태로 꽃을 피운다. 그것도 "봄날의 꽃 잔치가 어지간히 끝나갈 무렵"에. '햇살처럼 눈부신 하얀 피부'로 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먼 곳에서 개화하기에 '늦봄의 축복'이다. 이른바 한여름에 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 떨어진 봄꽃들을 '닮은 순백'으로 다시 일어서는 '넉넉한 향기는 온 우주를 삼킬 듯'하다. 삶이 깊은 바닥에 이를수록 '세상의 오물 모두 다 품어내고도 철철 남을' 고독의 바다에서 더 깊어지는 법. 그러니 당신도 늦게 핀다고 서둘지 마라. 늦봄이 올 때 이전 것 모두가 어제가 되는 날, 오늘 고독한 당신도 내일 태산목과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