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301000818100041382

잘 터져야 한다.

씨앗이 말했다.

잘 까져야 한다.

꽃봉오리가 말했다.

바람을 잘 피워야 한다.

우듬지 이파리가 말했다.

잘 박아야 한다.

나무 밑동이 말했다.

잘 올라타야 한다.

장작이 말했다.

잘 까져야 한다.

시가 말했다.

이정록(1964~)

권성훈_교수.jpg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모든 세계는 껍질을 깨고 나온다. 식물이 흙을 뚫고 나오듯이 인간도 어머니의 몸을 통과해서 생겨나는 것. 껍질은 그 세계를 보호해주는 것이면서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을 지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파리' 하나 피울 수 없으며 어떠한 이름조차도 가질 수 없는 것. 이를테면 '씨앗'이 힘을 다해 껍질을 깨고 나와야 꽃을 피울 수 있듯이 누구나 자신을 그곳에서 꺼내야 명명될 수 있다. 사실상 '잘 까져야'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향한 기다림과 같은 인내와 변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럴 때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거기서 안주하는 자는 자신의 '꽃봉오리'도, 세상의 '우듬지'도 만날 수 없다. 그 운명적인 산실에서 수많은 언어의 껍질을 까고, 행간의 시어가 발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나 시를 쓸 수 있어도 누구나 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