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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슬픈 일이지만 요즘 시를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남이 알아주든 말든 지금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꾸역꾸역 냈고, 여섯 번째 시집 '거짓말의 탄생'에서는 전권을 '거짓말'로 채운 바 있다. '거짓'이라면 오해가 있을 듯, 좀 더 고상한 용어로 '판타지'라 해 보자. 내가 사용한 판타지는 현실성 없는 '해리포터식' 판타지가 아니라, 디테일이 정교한 '보르헤스적'인 판타지였다. 전자가 상상력 위주의 지시적 담론이라면, 후자는 처음부터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 거짓을 통해 현상의 질서를 찾아내려는 리얼리즘적 담론이라 하겠다. 그러니 나도 거짓에 대해 말 한마디쯤 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보르헤스식 거짓은 내면의 질서를 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착한' 거짓말인 셈이다. 독자에게 즐거운 충격을 주기 위해 문학적 장치로 판타지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와 달리 흔히 일컫는 '거짓'은 원래 나쁜 것,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의 층위에 거짓에 대한 거부감이 형성되고, 이 결과 당연히 거짓말하는 사람을 배제하려는 심리를 갖게 된다. 진실을 향한 장치로서의 거짓말이 '착한 거짓'이라면, 진실을 왜곡해 불합리한 이득을 취하려는 거짓말은 '나쁜 거짓'에 해당한다.

그릇된 정보나 주장 펼치는 '왜곡'
자신 이익위해 일삼아 가장 나빠


나쁜 거짓말은 어떻게 태어날까. 나는 세 가지 이유를 가늠해 본다. 하나는 무지, 즉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 그래서 사실이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거짓이다. 두 번째는 편견, 즉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신념만이 옳다고 여겨 다른 이의 견해를 틀린 것으로 모는 거짓이다.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는 것으로,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본다. 세 번째는 왜곡, 그러니까 분명히 거짓임을 알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정보나 주장을 펼치는 거짓이다. 가장 질이 나쁜 것으로, 특히 정치·경제·언론의 권력층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례들이다.

거짓을 만드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게 더 큰 잘못이다. 우리는 많은 거짓 앞에서 대부분 못 본 체 눈을 감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도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무지에 의한 방관이다. 거짓인 줄 미처 모르는 것, 그래서 비난하기도 어렵다. 두 번째는 알면서도 무시하는 경우이다. 내게 직접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대부분 사람들은 거짓에 관대해진다. 세 번째는 거짓과 공범인 경우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에 동조하면서 거짓을 옹호하고 거짓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이다.

거짓 알면서도 묵인은 더 큰 잘못
방관·무시로 못 본체하는게 문제
관대할수록 사회는 더 망가진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가 거짓에 관대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 심각하게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거짓은 한 개인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운명과 미래에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된다. 하나의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을 만들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부당한 이득을 본 집단이 있으면, 당연히 억울하게 피해를 본 집단이 생겨난다. 역사에서 이런 사례를 우리는 참으로 많이 보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 해방 후에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검사·의사·언론 등 사회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거짓말을 일삼아 왔는지, 일부 종교집단이 혹세무민으로 사회를 얼마나 어지럽혔는지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거짓을 막기 위해서는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 지금 '언론중재법' 처리를 두고 논란이 많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니, 사실 '논란'은 일부 기득권층의 저항이라고 해야 맞겠다. 처음 단단했던 이 법이 여기저기 손을 거치는 사이에 물렁물렁해졌고, 겨우 벌금 하한선 1천만원에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하겠다는 데에도 온갖 생쇼로 반대를 하고 있다. 거짓뿐 아니라 모든 범죄는 얻은 이득보다 처벌이 더 강하지 않는 한 절대 물리칠 수 없다. 독일은 가짜뉴스 배포자에게 최고 640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말레이시아는 6년 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에 절반이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