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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리움이 저 달리아 같은 붉은 꽃물결을 피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혈관 속에 저 푸른 파도를 울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저 흰구름을 밀고 가는가

어떤 그리움이 흘러가는 강물 위에 저 반짝이는 햇빛을 펄떡이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끊어진 손톱과 끊어진 손톱을 이어놓는가

어떤 그리움이 저 돌멩이에게 중력을 잊고 뜨게 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시카다 매미에게 17년 동안의 지하 생활을 허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시카다 매미에게 한 여름 대낮의 절명가를 허하는가

어떤 그리움이 저 비행운과 비행운을 맺어주나

지금 파란 하늘을 보는 이 심장은 떨고 있다

불타는 심장은 꽃들의 제사다

이 심장에는 지금 유황의 온천수 같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데

김승희(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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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꽃 피는 자리가 꽃의 무덤이다. 꽃잎이 흩날리고 있다면 그것은 꽃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것. 어디도 가지 않는 애태우던 그리움이 "달리아 같은 붉은 꽃물결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매미가 마지막 생애의 노래를 온몸을 떨면서 부르듯이 허물을 벗는 시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순간이다. '불타는 심장'을 가진 그리움같이. 만약 안간힘을 다해 '어떤 그리움' 타오르는 불꽃을 본다면 뒷모습이 남긴 그림자 일지니. 그런 그리움은 수없이 주어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팽창하는 것. '혈관 속에 저 푸른 파도를 울게'하고, '저 흰구름을 밀고 가'고, '흘러가는 강물 위에 저 반짝이는 햇빛을 펄떡이게 하'고, '저 돌멩이에게 중력을 잊고 뜨게 하'고, '저 비행운과 비행운을 맺어' 준다. 당신도 '지금 파란 하늘'가에서 '온천수 같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가. 그것은 가슴 아플수록 뜨거워지는 마지막 기억이 무덤에서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