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티슈 하나로 중견기업을 일군 한울생약 한영돈(70) 회장은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흔히 말하는 '맨주먹 신화'를 이룬 기업가다.
그런 그가 요즘엔 자신의 사업보다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일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한 회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이사로 선임된 뒤 곧이어 올해 5월 경기북부 지역회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됐다. 더구나 중첩규제와 인프라 부족 등 사업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은 지역이라 부담도 따르는 자리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말을 듣는 한 회장의 역량에 기대를 거는 기업인이 많다. 무엇보다 한 회장 역시 눈물겨운 시절을 보냈던 터라 중소기업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한 회장은 청년창업이 흔한 요즘 시각으로 보면 불혹의 다소 늦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물티슈라는 창업 아이템도 그가 해온 일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성공할 거라고 믿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회장의 첫 직업은 '호텔리어'다. 청소부로 시작해 지배인의 자리까지 오른 성공담은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한 회장은 "제조업이나 유통업을 해보고 싶은 맘은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뭘 해야겠다는 목표는 없었다"며 "물티슈로 사업을 시작한 건 아주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호텔 일에 회의감이 들던 어느 날, 한약재 판매상을 하는 한 친척이 "한약 성분이 들어간 물티슈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라고 무심코 던진 말에 그는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성공예감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그 무렵 사업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쳐 앞뒤 재지 않고 사업계획에 몰입했다"며 "어느 정도 계획이 서자 평생 모은 1억5천만원을 들고 고양시에 회사를 차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기대와 달리 1년 반 만에 위기를 맞게 된다. 대부분 기업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초기 창업의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저조한 매출에 당시 아파트 한 챗값의 사업자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세계 최초 클렌징 워터 기능의 물티슈를 개발해내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한 회장은 "앞날이 암담했지만 살길을 찾아야 했다"며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들어 보려고 밤낮없이 실험에 매달렸고 만들고 보니 다행히도 생각했던 거보다 좋은 반응이 나왔다"고 술회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클렌징 티슈로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던 2013년,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인체 유해성분이 든 제품은 시장에서 모조리 퇴출당하던 그때 천연 성분만을 고집해 온 한 회장의 차별화 전략이 마침내 통한 것이다.
한 회장은 "생약 성분을 쓴다는 소문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퍼지자 제품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고 화장품 대기업에서도 납품주문이 밀려들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고 말해 당시 제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5년 전 목표로 내건 1천억원 매출 달성을 목전에 둔 시점에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호텔리어를 버리고 창업을 택했던 30년 전과 달리 이번엔 사업이 아니라 사회공헌이다. "동료 중소기업인들의 무거운 짐을 나눠서 지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 회장은 사실 일찌감치 사회공헌사업에 발을 들였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업체가 있는 파주를 중심으로 장학사업(파주시행복장학회), 저소득층 돕기, 탈북민 정착후원, 암센터 연구재단 정기후원 등 사회사업이 끊이질 않는다.
국립암센터에 정기적으로 연구발전기금을 후원하고 있으며 비영리재단인 '아름다운 봉사회'에서는 재단 이사장(2대)까지 맡기도 했다. 특히나 장학사업은 지역 인재육성을 위해 한 회장이 직접 운영하며 공을 들이는 사회사업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동료 기업인들과 미얀마에서 수도시설이 없는 오지 마을에 우물을 파 식수를 공급해 주는 구호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 회장은 기업가 인생의 첫 출발지인 고양시와 파주시 등 경기 북부를 오랫동안 사업의 주 무대로 삼았다. 이 때문에 지역의 기업 생태계를 누구보다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도 잘 안다.
지난해부터 이 지역 중소기업은 수도권의 다른 지역과 달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의료기기와 전자,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집중돼 있는 남부지역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북부지역은 전통 제조업과 영세 내수기업 비중이 커 경기불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지역 42만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이곳에서 일하는 97만명의 근로자가 위기에 내몰린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기업가 인생 출발' 파주·고양 등 전통 제조업·영세 내수기업 위주 작년부터 절박한 상황
지자체-중기협동조합 연결에 주력…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지역 경제 활성화에 집중
장학사업·저소득층·탈북민·암 연구 후원… 미얀마 오지마을 식수공급 사업도 챙겨
이런 상황을 오래 지켜봐 온 한 회장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정부·지자체와 중소기업을 이어줄 가교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우리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를 중소기업 정책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이 문제를 줄여나가는 사고방식이라면 중소기업은 문제를 자유롭게 끄집어내 바로잡는 데 역점을 둔다"며 "이렇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 해결방식이 다르듯 지역마다 중소기업의 처한 상황이 달라 그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곳 중소기업인들은 중소기업중앙회 경기북부 지역회장으로 한 회장에 힘을 실었다. 산업과 경제가 새로운 흐름으로 가는 격변기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적임자로 지난 5월 그를 선택한 것이다.
한 회장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주고 있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 하나로 대범하게 창업에 뛰어든 벤처기업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끌어안아야 한다"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 회장은 취임한 뒤로 지자체와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연결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연결은 지자체의 중소기업 지원이 쌍방향으로 원활하게 이뤄지게 하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포천시 등 경기 북부 여러 지자체가 중소기업 지원 조례를 잇달아 제정해 지역 중소기업의 제도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역에서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위해 각종 관련 단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기북부지부 모혜란 지부장은 "경기 북부 지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기에 지역경제 안정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한 회장이 밀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 지원조례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회장은 "지금까지 사업을 통해 쌓은 경험과 경력이 중소기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정부와 소통하는 대변자 역할도 마다치 않을 것"이라며 "경기 북부 산업현장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대안을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 찾을 것이며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의 애로를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