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9월 말, 인천 애관극장에서 홍콩 영화 '취권'을 상영했다. 개봉작 대부분이 한 달도 안 돼 간판을 내리는데, 어쩐 일인지 3개월 넘게 이어졌다. 서울 기준 89만명을 동원해 1970년대 추석 개봉작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2위인 겨울 여자(1977년 58만명)를 압도하는 이변이다. 당시 영화를 보지 않은 중고생이 없을 정도였고, 명절 때면 TV 단골 프로그램이 돼 안방을 찾았다. '재키찬' 성룡의 출세작으로, 극 중 스승인 걸인 '소화자'는 취권(술 취한 권법)의 대명사가 됐다.
1980년대 동인천 거리는 시네마 천국이었다. 경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만 10개 넘는 극장에서 국내·외 개봉작을 쏟아냈다. 애관, 동방, 문화, 미림, 오성, 인영, 인천, 현대 극장까지. 선생님들 눈을 피해가며 몰래 들락거린 현재의 50~60대 장년층엔 춘풍(春風) 일렁이는 명소들이다.
경동 시네마 거리 맏형인 애관극장은 100년 넘는 세월을 품은 문화 자산이다. 1895년 설립된 국내 1호 실내극장 겸 공연장 '협률사(協律舍)'의 127년 역사를 이어받았다. 1926년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애관으로 명패를 바꿨다. 엄혹한 일제 치하, 내국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활동사진 상설관이다. 세태 변화로 부침을 거듭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고, 2017년 매각설이 나돌았으나 근근이 버티고 있다. 내부는 달라졌어도 외관은 예전 그대로다.
인천 시민과 시민단체가 애관극장 지킴이 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지역 45개 단체에, 타 지역 7개 시민단체가 힘을 보태기로 했다. 애관극장 공공 매입을 위한 시민 모금 운동을 추진한다. 십시일반 성금과 기업체 후원, 인천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시는 지난해 5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공공 매입 여부를 검토해왔으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문화·역사 가치는 충분하나 건축물 평가에서 의견이 갈린다고 한다. 감정평가대로 사들여 근대문화 자산으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경동 길 언덕 위 애관극장은 지친 일상의 휴식처였고, 만남의 광장이었다. 누군가는 꿈을 키웠고 청춘의 한 때, 까르르 웃었다. 외형·물질 가치만으로 문화 자산을 평가하는 건 부끄럽지 않은가. 어느 누구든 '애관극장의 추억'을 영영 지워버릴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