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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번째 3·1절을 앞둔 지난달 25일 만난 김재옥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여성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분들의 헌신을 재조명하는 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민초들의 삶을 언급했다. 이날 인터뷰가 이뤄진 김 이사장의 사무실에 민족대표들의 존영이 빠짐 없이 걸려있다. 올해 100주기를 맞은 의암 손병희 선생의 존영이 가장 왼편에 놓였다.

차량이 줄지어 서있는 주유소 한쪽에 작은 문 하나가 있다. 좁은 계단을 오르니 그의 사무실이 나왔다. 3·1운동(그는 3·1혁명이라고 했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 대표들의 존영이 벽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해공 신익희의 장남이자 그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신하균이 퇴계 이황의 시를 옮겨 쓴 작품 등도 걸려있었다.

본업은 대신자연에너지 대표, 그러나 본업 못지 않게 3·1혁명의 가치를 되새기고 역사를 바로 조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그는 김재옥 사단법인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이다. 3·1절을 나흘 앞둔 지난달 25일 찾은 김 이사장의 개인 사무실이 이런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김재옥 민족대표 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8

민족 대표 33인은 1919년 3·1혁명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들을 뜻한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별로 참여했다. 33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미독립선언서의 기획부터 3·1혁명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핵심 인사는 48인이었다.

3·1혁명 이후 48인의 재판 기록을 엮은 자료를 인터뷰 내내 손에서 놓지 않던 김 이사장은 "독립 선언과 3·1 혁명은 을사늑약 이후 10년 이상 준비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중국, 러시아 등으로 이주해 갔고 그곳에서 독립을 위한 준비 등이 오랜 기간 이뤄져 왔다"며 "33인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핵심 인사는 48인이었다. 이중 김세환 선생은 수원에 학교를 설립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주력했지만, 수원이 전국 독립운동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거듭나게 했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민족 대표 48인의 재판 기록을 보고 또 볼수록 나라, 그리고 민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이분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나라, 그리고 우리 민족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선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놓고 희생했는데, 그건 결국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키려 했던 나라와 민족을 후손들이 지켜내지 못한 채 남북으로 분열돼있다.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돼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3·1혁명이후 4개월간 7천명가량 숨져 후손들 삶은 애절하고 괴로워
보이지 않은 많은 여성들 '희생' 조선 어머니들의 헌신 재조명하고파
민족대표 중 몇몇 친일행적 논란… 옹호 아니지만 공과 구분 평가해야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는 1952년 민족 대표 중 한 명이었던 연당 이갑성이 '33인 유가족회'를 설립한 데서 출발했다.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기념사업회를 후원해온 김 이사장은 2018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사업회 일을 도우면서 구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게 된 게 그의 발을 이곳에 묶었다.

김 이사장은 "3·1혁명 이후 4개월 동안 7천명 가량이 숨졌다. 아마 더 많은 분들이 작고했을 것이다.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의 집안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지금도 어렵게 살고 있다. 남은 가족들, 후손들의 삶을 직접 봤다. 애절하고, 슬프고, 또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구국을 위해 뛰어들었는데, 그 뒤엔 보이지 않는 많은 여성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어머니, 할머니, 누나와 여동생이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큰 고초를 겪었다.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나라가 없어 설움을 겪었던 피해 할머니들도 있다. 아직 사과 한마디도 못 받지 않았나. 이런 조선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재조명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다. 이분들이야말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가장 핵심인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옥 민족대표 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2

독립 선언과 3·1혁명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명되지 않은 민족 대표를 묻자, 김 이사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지금 이 벽에 민족 대표들의 얼굴이 모두 붙어있다. 이들 중에는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됐다가 친일 행적 논란으로 이후에 박탈된 분들도 있다. 동상이 파괴된 분도 있었다. 물론 근거를 둔 평가다. 그분들의 행적 모두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적인 상황을 감안해 공과를 구분해 평가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독립선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일본 인사들과 접촉한 점 등까지 모두 친일 행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결국 나라를 잃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빠짐없이 모든 인사들의 존영을 붙인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3·1혁명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인사 48인 중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최린, 박희도, 정춘수, 최남선, 현상윤이 이름을 올렸다.

동시에 3·1혁명의 가치가 폄훼되거나, 낮게 평가받아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이 탑골공원(파고다 공원)이 아닌 당시 음식점 겸 술집이었던 태화관이었던 점 때문에 마치 일각에서 '낮 술판을 벌이다 한 일'처럼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이사장은 "파고다 공원으로 계획했다가 그해 1월 고종의 붕어로 나라가 혼란스러워 독립 선언과 만세 운동을 벌일 시 사태가 매우 커질 것을 우려해 태화관으로 장소를 바꾼 것뿐"이라며 "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 대표 다수가 옥고 끝에 숨졌다. 그분들이 지키려고 한 나라의 후손인 우리가 손가락질하거나 음해해선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같이 주장했던 역사 강사 설민석씨의 재판 당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이사장에 선임된 지 5년차, 3·1혁명을 맞은 그의 소망은 올해 의암 손병희의 100주기를 맞아 기념관을 만들고 동상을 국회에 세우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손병희 선생은 3·1혁명을 주도하다 체포됐고, 1922년 5월 19일에 작고했다. 올해가 100주기다. 별도의 기념관 건립을 올해부터 추진해 2030년에 완공하는 게 목표다. 가급적 수원에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동상이 서울 탑골공원과 출생지인 청주에 있지만, 국회에도 세워졌으면 한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 여러 위인을 조명하고 그분들의 뜻을 새겨야 하는 것만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 민족의 지도자였던 분들을 세워야 나라도 잘된다. 범국민적 의지를 모아 하나하나 추진해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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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원 입대가 줄을 잇는 등 러시아에 대한 거센 저항 속에 전 세계가 평화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국을 위해 조선의 민초들이 들어 올렸던 태극기가 3월 1일을 맞아 다시 펄럭인다. 김 이사장이 회장을 맡은 수원상공회의소 건물에도 3·1혁명 당시에 사용됐던 '진관사 태극기' 사진이 커다랗게 내걸렸다.

"이런 슬픈 역사는 다시는 없어야겠죠. 그러려면 우리가 하나가 돼야 합니다." 그가 역설하는 나라의 소중함, 평화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남다르게 다가왔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김재옥 이사장은?

△ 1955년생
△ 대신자연에너지 대표, 청명건설 회장
△ 수원사랑장학재단 이사, 수원생활음악협의회 회장, 경기도이순테니스협회장
△ 2018년~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
△ 2021년~ 제24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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