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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수 노무사
스토킹 가해자 전주환이 신당역에서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후, 현재까지도 안타까운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두고 사회적 논쟁이 격렬하다. 이 사건의 피해자를 포함하여 너무나 오랫동안 억울한 피해자들, 특히 여성들이 유사한 형태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받아왔다. 많이 늦었으나 이제라도 사회가 중지를 모아 해결책을 찾는다면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신당역 살인사건과 약간이라도 관련 있거나 일종의 식견을 가진 자들이 저마다 어떤 제도, 어떤 기관이 가장 큰 문제라고 떠들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사기관은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이 문제라 하고, 검찰과 경찰은 서로의 수사 능력을 힐난한다. 여성가족부는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소속된 서울교통공사가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고 하고, 서울교통공사는 피해자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교묘히 탓한다.

신당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다 끝내 흉악 범죄로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어떤 사업장, 한 제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모든 기관과 사람들이 직장 내 성폭력, 스토킹 범죄, 여성혐오, 성차별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 끝내 평범한 노동자의 목숨을 잃게 만든 사건이다. 끝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까지 큰 원인부터 작은 원인의 제공자까지 모두 뼈저린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서울교통公, 기소 불구 직위해제뿐
접근차단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않아
선제 대응했다면 슬픈일 없었을것


노무사로서 안타까운 점은 직장 내 성폭력, 괴롭힘, 스토킹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해 있는 사업장이자 사건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서울교통공사가 소속 직원인 피해자에게 문제 해결에 관한 어떤 신뢰도 주지 못했었다는 사실이다.

불신의 이유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주환이 불법촬영 및 스토킹 범죄로 기소당했음을 통보받았음에도 직위해제만 했을 뿐 접근 차단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고(이러한 조치는 피해자 신원을 인지하지 못해도 가능하다), 살인사건 발생 후 '여성 직원 당직 축소'라는 한참 어긋난 대책을 내놨으며, 심지어 분향소에서 피해자 실명을 노출하여 피해자 보호에 관한 관심과 노력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유족에 따르면 전주환과 피해자의 동료들은 "가해자는 좋은 사람인데 누가 신고했을까"라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했다고 한다. 단편적인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교통공사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룰 책임과 자세, 성 인지 감수성이 전무한 회사다.

만약에 서울교통공사가 근무환경을 해칠 수 있는 전력을 가진 자를 채용에서 걸러냈다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해 꼼꼼히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피해 초기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를 철저히 분리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샅샅이 차단했다면. 이미 소중한 목숨을 잃은 뒤이므로 슬픈 가정이나마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사건 반복없도록 관용없는 장치 절실
제도 만큼 모든 구성원 인식도 중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사건 발생 열흘 만에 사과하면서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유사한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성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자에게 관용 없는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피해자가 회사를 신뢰할 수 있는 보호 대책 또한 필수적이다. 제도만큼 구성원의 인식도 중요하다. 기소까지 당한 범죄 가해자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용되는 집단 분위기에서 피해자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모든 관련 있는 자의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사법적으로 벌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비상벨을 눌러 가해자 검거를 도운 책임 있는 노동자였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 아이가 선구적 역할을 한 것 같아 자랑스럽다"라며 이 사건이 여성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교통공사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 기관, 나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유사한 형태의 성폭력과 괴롭힘을 해결하고, 돕고, 공정하게 바라볼 자세가 되어 있는지 반문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