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치던 항해사와 기관사에 도전하는 인천해사고등학교(이하 인천해사고) 여학생들이 생겨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천해사고 올해 초 졸업생(39기)인 이푸름(19)씨는 올 8월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대만을 운항하는 3천t급 케미컬선(화학제품 운반선)에서 삼등 항해사로 근무하고 있다. 인천해사고를 졸업한 여학생 중 항해사로 취업한 사람은 이씨가 처음이다.
"큰 배를 타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꿈을 이루고자 인천해사고에 입학했다"는 그는 "인천해사고 출신 1호 여자 항해사로서 후배들이 나의 길을 따라올 수 있도록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던 인천해사고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아 2014학년도부터 전체 신입생 정원(120명)의 10%를 여학생으로 선발했다.
매년 10명 내외의 여학생이 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근무하는 꿈을 꾸고 인천해사고에 들어왔지만, 안타깝게도 항해사나 기관사로 근무하는 여자 졸업생은 지난해까지 한 명도 없었다.
이씨는 "여자 항해사나 기관사는 선발하지 않는 현실에 부딪혀 뜻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기업에 취업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푸름씨, 여학생 첫 3천t급 근무
대부분 해군 부사관·해경 등 진로
유리천장 깬 선배 모습 후배에 희망
여자 졸업생은 대부분 해군 부사관이나 해양경찰 등 공무원에 도전하거나 물류회사 육상직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달리 인천해사고 남자 졸업생 중 80% 이상은 항해사나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천해사고 관계자는 "선박에 승선하는 직원이 대부분 남성이어서 선사들이 배 안에 여성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데다, 여성은 항해사나 기관사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할 것이란 편견 때문"이라며 말했다.
이푸름씨처럼 지난해부터 '유리 천장'을 깨는 여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푸름씨와 동기인 여자 졸업생 2명도 여객선에서 삼등 기관사로 일하고 있다.
이푸름씨 등 선박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후배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인천해사고 3학년 곽찬미(18)양은 "올해에도 2개 선사에서 여자 항해사와 기관사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직 남학생과 비교하면 취업할 수 있는 선사가 한정적이지만, 진로가 생기면서 항해사나 기관사를 희망하는 후배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해사고 김상환 교장은 "먼저 취업한 여자 선배들이 잘해줘서 여학생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선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학생들이 성별로 차별을 당하지 않고 저마다 적성과 진로에 맞춰 취업할 수 있도록 선사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