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영 '엄마의 신전(2020)'
문지영 '엄마의 신전(2020)'.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 '법적 혼인으로 이뤄진 건강한 가정', '비장애인'. 한국 사회의 '정상가족 신화'를 구축하는 이 조건들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동거인의 법적 보호자임을 인정받거나, 이동권 같은 기본권을 사수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고 광장으로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퀴어', '장애인' 등 소수자 정체성으로 가족을 꾸리고 평범한 일상을 바라는 건 365일이 투쟁의 연속이다. 반대 논리에 맞서 보통의 존재라는 점을 끝없이 증명해내야 한다. '정상성'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견고하면서도 배타적인 걸까.

작가 11명·3개 섹션 '혈연 중심의 가족' 탐구
1부 가부장제속 성 역할에 맞춘 여성 보여줘


수원시립미술관의 현대미술 기획전 '어떤 Norm(all)'은 이런 맥락을 토대로 의문을 한가득 안고,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혈연 중심의 가족'을 들여다본다. 전시는 반문하고, 탐구하면서 마침내 대안을 찾아가는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11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56점의 작품은 한국 사회가 설파하는 '정상가족 신화'에 담긴 모순과 부조리를 들춰낸다.

1부 '지극히 정상적인'에서는 '정상성'이란 기표 아래 위태롭게 뭉쳐 있던 가족이란 개념을 조각조각 해부한다.

박영숙 작가의 사진 '미친년 프로젝트(1999)'는 '정상가족' 역시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쓰레받기, 부탄가스 등이 널브러진 자리에 어린아이가 누워 있다. 그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은 무표정으로 관람객들을 응시한다. 가부장제 속에서 주어진 성 역할에 맞춰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대표한 듯 보인다.
 

2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에선 소수자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근거로 규범 밖의 존재를 철저히 배제하는 식으로 쌓아온 '정상가족'의 권위를 허물어트린다.

문지영 작가의 '엄마의 신전(2020)'은 장애인 가족을 둔 작가의 자전적인 사례에서 출발했다. 작품은 장애를 가진 자녀가 무탈하길 바라며 기도하는 엄마의 염원을 물이 담긴 밥그릇과 소반으로 표현했다. 이는 평범한 존재로 살기 위해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가족의 현실을 은유한다.

이어지는 홍민키 작가의 다큐멘터리 '들랑날랑 혼삿길(2021)'은 그간 한국 사회의 혼사에서 철저히 배제돼 온 퀴어를 보여주며 '결혼의 정상성'에 의문을 던진다. 결혼 적령기에 든 성소수자인 주인공 '민기'가 결혼에 대해 가족, 애인 등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2부 규범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들 담아
3부 기존 권위 무너진 자리 포용의 세계 표현


'가족을 넘어'라는 주제의 3부는 '정상가족'의 권위가 무너진 빈자리를 또 다른 차별로 채우는 대신, 소수자를 포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재건한다.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영상 작품 두 편(안가영 '히온의 아이들', eobchae '대디 레지던시')은 혈연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와 공생을 꿈꾸는 미래를 그렸다.

전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김용관 작가의 '무지개 반사(2023)'는 여러 구조물의 표면을 '퀴어 심볼' 무지개 이미지로 감싼 작품으로, 다양한 색깔을 품은 무지개를 통해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용관, 무지개 반사, 2023
김용관 '무지개 반사(2023)'.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어떤 Norm(all)'은 이렇게 '정상가족'이 가진 모순을 하나둘 들여다보며 마침내 '다양성'이란 대안을 마주한다. 그리고 과연 이 '다양성'은 기존의 '정상성'을 대체할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지 관람객들에게 묻는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