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최성규(사진) 목사가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11월8일이다. 옛 인천시민회관 사거리 부근 시민빌딩 지하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인천지교회를 세우고 목회 활동을 시작하면서다.
1941년 충남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사업을 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7세에 신학을 시작했다. 1978년 한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교무국장을 지내다 인천에서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그렇게 시작한 교회는 창립 3년 만인 1986년에 등록 교인 수가 1만400명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컸고, 10년째가 되던 1993년에는 등록 교인이 5만명을 넘기며 세계적 규모의 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10년만에 세계적 규모 교회로 성장
간석동에 대학교 설립·법 제정도
고인은 양적 성장을 이루는 데 만족하지 않고 성경의 가치를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활동에도 공을 들였다.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동시에 효(孝) 운동을 이끌었는데, "성경에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효 정신이 있다"며 '성경적 효'를 내세웠다.
고인은 인천이 효 실천을 통한 인류 평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랐다. 1997년 인천 남동구 간석동에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했고 한국효학회, 한국효단체총연합회 등 효와 관련한 여러 단체를 만들고 이끌었다.

2007년 제정된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그가 펼친 다각적인 '효 운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2016년 11월에는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며 목회 사역에서 물러났다. 장남 최용호 목사가 2대 담임목사로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일 빈소에서 만난 칸 아킬(55) 효글로벌하모니교회 목사는 고인과의 작별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출신으로 1994년 고인과 만났는데, 고인의 권유로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현재까지 연수구에서 20년 넘게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인천순복음교회 1층 '예루살렘성전'에 마련됐다. 장례는 교단(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장으로 치러진다. 천국환송예배는 4일 오전 7시 교회 대성전에서, 하관예배는 같은 날 오전 11시 충남 천안 소사리 선산에서 진행된다. 유족으로는 장남 용호와 차남 용석(성산효대학원대학교 교수), 장녀 한나(숙명여대 교수)씨, 부인 김정자 여사가 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