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11일 공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비리 규모는 적절한 논평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권익위는 선관위가 지난 7년간 162회 실시한 경력채용을 조사한 결과 104회에서 353건의 채용비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7년 간 경력채용한 384명 중 부정합격 의혹자는 15%인 58명이다. 권익위는 채용비리에 연루된 선관위 직원 28명을 고발하고, 특혜와 부정 등 규명이 필요한 312건은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헌법 기관으로는 전례 없는 규모의 공직채용비리 혐의다. 부정합격 의혹자 중 31명은 법적 근거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특혜를 받았다. 1년 임기제로 채용한 뒤 서류·면접시험 없이 정규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 채용공고를 내부 게시판에만 올려 합격자를 선관위 관련자로 제한하는 부당행위로 29명이 선관위 공직자가 됐다. 2명은 두 경우에 모두 해당했다. 부정합격으로 분류하진 않았지만 국가공무원법과 선관위 채용절차를 위반한 사례만 299건이다. 권익위의 온정적 분류일 뿐 사실상 부정합격이라 규정해도 무방하다.

비리의 규모만으로도 놀랍지만, 비리의 진상 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선관위 채용비리 의혹은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시비로 불거졌다. 국민의 비난 여론에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시작된 권익위 조사였다. 권익위는 조사 결과 보도자료에 선관위의 비협조를 적시했다. 비공무원 채용 전반, 경력채용 합격자와 채용 관련자 간 가족관계나 이해관계 여부를 점검할 자료 제출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채용비리에 내재된 특혜와 부정의 진상 규명을 수사기관에 넘긴 이유다. 채용비리를 구성하는 특혜와 부정의 진실 규명은 검·경의 몫으로 넘어갔다.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권익위의 공개로 선관위는 씻기 힘든 치욕을 감당하게 됐다. 의혹 발생 초기에 실행했던 자체 감사가 권익위 조사 수준이었다면 지금쯤 치욕을 딛고 조직을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헌법기관을 앞세워 봉합하려다 헌법기관의 위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신뢰의 표상이어야 할 선관위가 불신의 나락에 떨어졌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의 위상 추락은 심각한 일이다. 선관위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면 직원 전체가 옥쇄할 수 있다는 각오로 채용비리의 진상 규명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