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의 경고 보도로 공론화된 정모씨 일가족 전세사기 의혹 사건이 수원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피해자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불안하다. 앞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다수의 대형 전세사기 사건으로 정부와 지자체 등이 대책을 내놓고, 검·경이 엄정한 법 집행을 다짐했지만 피해자들에겐 공염불에 가깝다. 피해 구제의 핵심인 전세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사건 구조 때문이다.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지난주 마련한 수원 전세피해자를 위한 현장 설명회에는 대부분 청년 세대인 수백여 명의 피해자들이 참석했다. 경기도 관계자들은 전세사기특별법과 경기도의 피해자 지원 정책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세보증금의 현실적 반환 가능성을 알고 싶은 피해자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은 떼인 전세보증금 만큼의 무이자 대출, 전세대출 미상환금 장기 무이자 분할 상환, 주택우선매수권 등 피해자 지원 대책을 담고 있다. 지자체들도 지원 정책을 마련했는데, 경기도의 경우 150만원의 이주 비용과 100만원의 긴급 생계자금을 지원한다.

모두 전세사기 피해가 확정되고, 피해 원금 회수가 불가능해진 뒤의 대책이다. 피해자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정씨 일가족의 전세사기 의혹 관련 예상 피해액이 확인된 세대는 394세대 475억원에 달한다. 피해 예상 주택은 671세대로 피해 금액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공포는 전세금 회수 불가능 사태다.

피해자들은 정씨 일가에 대한 경찰·검찰의 신속한 수사와 재산 동결을 원한다. 1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경찰은 정씨에 대한 조사도 시작하지 않았고, 검찰은 뒤늦게 검·경 공조에 나섰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의자들이 대개 가벼운 처벌로 피해복구 의무를 회피하고, 일부 피의자는 사기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된 과정들을 기억하며, 이번 사건 수사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검·경은 신속한 수사로 전세사기 혐의자의 재산은닉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특별법을 손질해야 한다. 현행 특별법은 범죄자의 재산환수 포기를 전제로 설계됐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범죄자의 적극적인 재산환수를 전제로 '선 구제 후 회수' 원칙에 입각한 법 개정을 원한다. 전세사기 사건은 경제적 정의가 빠지면 사법 정의 실현이 어려운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