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이다. 경인일보는 지난 10일자 본란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과 관련해 수도권의 의사부족 사태를 지적하고, 도내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관련 기관의 협력을 촉구했다. 이후 정부·여당의 정원 확대 방침이 본격적으로 공론화 되고 야당이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혀 수십 년간 지체됐던 의사 부족 현상이 해결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암초가 등장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총파업으로 저지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이번에도 같은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궁지에 몰려 백기를 든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협과 의료계가 선언대로 파업에 나설 경우 의료대란이 불가피해 의대 정원 확대 동력이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의사협회와 의료계는 의대 증원에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 의대 정원은 2000년 3천507명에서 2006년 3천58명으로 줄어 17년째 동결됐다. 그 결과가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가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그 의사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공공 의료환경은 폐허가 됐다. 그 의사들이 돈 되는 진료과목에 쏠리면서 필수의료 분야는 고사 중이다. 수도권이라고 지방과 다르지 않다. 공공의료원은 의사가 없고, 산모가 병원을 찾아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의협과 의료계가 아무리 그럴듯한 반대 논리를 내세워도, 국민 귀에는 현재의 의사 인력 규모를 유지해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의사들은 돈 되는 진료에 열중하는 사이 아이들은 소아과병원 앞에 줄서고 응급환자는 병원을 헤매다 사망하는 현실에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밥그릇을 초월한 반대 논리가 없다면 의사들은 달리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료인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와 의사 인력 확충이 역대 정권마다 회피해 온 정의임을 명심해야 한다. 야당도 동의하는 마당이니,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과 분야를 회복하는데 미치도록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