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주(週) 52시간 근로제'를 일부 업종에 한해 완화하기로 했다. 13일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말부터 2개월에 걸쳐 실시한 근로자, 사업주 등 6천30명 대상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제조업, 건설업과 연구·공학,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등에 한해 노사 모두가 희망할 경우 현재 '주 12시간'인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침이 8개월 만에 후퇴했다. 정부가 일주일 단위인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바꾸려 했던 이유는 기업에 일이 몰릴 때 근로시간을 늘려 몰아서 일하고 나중에 근로자들이 그만큼 몰아서 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3월 고용부는 '주 69시간 도입'을 제시했다가 장기간 근로에 대한 우려로 반발 여론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고용부는 필요한 업종과 직종에만 적용하는 '선별적 유연화'로 한 발 물러선 개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선 어떤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얼마나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고용부는 추후에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날 대통령실은 "근로시간 제도는 국민생활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노사 양측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맹탕'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과로사 조장법"이라며 제도 개편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11개월 동안의 추진실적이 설문조사 용역이 전부인 구시대적 꼼수 개악"이라고 폄훼했다.

향후의 구체 업종 지정까지 '산 넘어 산'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알맹이를 뺐다며 근로시간제 개편안이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여전한 데다 법을 개정해야 할 부분도 많은데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근로제 유연화는 물 건너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노동공급의 가파른 감소에다 잠재성장률 0%대 추락 또한 임박해 노동생산성 제고가 절실한 지경에서 노동계, 경영계, 정부, 정당이 모두 제 목소리만 높이고 있으니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