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내부적으로 중진과 다선 의원들의 '희생'을 놓고 치열하게 격돌 중이다. 지금까지는 말로 압박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텃밭인 영남권 현역에게 험지 출마나 용퇴를 요구하고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 중진들에게 쇄신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통령의 의중까지 등장했던 국민의힘에선 부산의 3선 하태경 의원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매끄럽지 않다. 같은 당 현역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이 영남권 중진의 험지 출마냐는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희생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속임수' '꼼수'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하 의원은 "원희룡, 한동훈 출마설 나올 때는 험지고, 하태경 나오면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울산이 지역구인 김기현 대표의 종로 출마설까지 언급했다. 험지 아닌 험지를 놓고 당내 구도가 어지러워지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훨씬 더 난해하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첨예한 대립까지 맞물려 있다. 친이재명 세력이 반대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진 험지 출마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해석이 파다하다. "3선 이상 다선 의원들이 험지로 옮겨 당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명계에 맞서 비명계는 "다수의 다선 의원을 보유한 친명계에서 먼저 선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먼저 행동에 나선 건 초선 의원이다. 경기 용인정의 초선인 이탄희 의원이 그제 현재 지역구에서의 불출마를 선언했다. 연동형 비례제 사수와 위성정당 금지를 위한 정치적 호소 성격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지역구를 내놓겠다는 것이어서 친명·비명 가릴 것 없이 당의 중진, 특히 경기도 지역의 다선 의원들에게 압박이 될 것이다.
중진의 용퇴, 다선의 험지 출마 요구는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어온 정치구호다. 쇄신과 개혁, 나아가 희생의 이미지로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얻어내려 하는 정치적 제스처다. 유권자는 그런 구호와 제스처의 진정과 위선을 가려내면서 마음을 정해왔다. 역대 총선 과정에서 당의 승리를 위해,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받아들인 선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한 솔선과 수범이 보이지 않는다. '꼼수'나 '정략적 계산'만 보일 뿐이다. 진정성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선거전략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사설] '용퇴'이든 '험지 출마'이든 진정성 있어야
입력 2023-11-29 19:42
수정 2024-02-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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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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