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신축할 때는 만일의 재난에 대비해 시공 과정과 재료에 고도의 안전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모든 학부모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실제 각종 건축 법령들이 학교 건축에 엄격하다. 하지만 학교 신축 현장에서 법령에 대한 무지와 법령 사이의 충돌로 재난 대비 안전 시공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학교·학원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와 내부 마감재료를 모두 불연자재 및 준불연자재로 시공해야 한다. 2003년 천안시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학생 9명이 숨지자 2004년 초등학교에 한해 불연자재 사용을 의무화했다가, 2019년 모든 교육시설로 확대했다. 교육부는 2020년부터 교육시설화재안전종합대책을 추진하면서 5년간 3조원을 투입해 기존 학교들의 외부 마감재를 불연자재로 교체하고 교실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불연자재 사용 의무가 무시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과 학교 48곳 중 42곳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학교 등 교육시설 천장 마감재로 방염재를 조달청을 통해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 및 준불연재와 달리 방염재는 불에 타는 소재 특성상 화재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경인일보 보도로는 도교육청과 학교 현장의 시설 담당자들이 관련 규정을 몰라 발생한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일부에서는 건축법시행령이 아니라 다중이용업소법 시행령에 따라 방염재로 교실 천장을 마감했다고 한다. 학교도 다중이용업소에 속한다는 것이다. 법령을 몰랐다는 사실이 놀랍고, 건축법시행령이 아니라 굳이 다중이용업소법시행령을 따른 태도가 기발하다.

불연재와 방염재는 자재비나 시공비용에서 큰 차이도 없다고 한다. 학교 안전을 책임진 당국과 관계자 입장이라면 법령을 따지기 이전에 방염재보다 화재에 더 안전한 불연재나 준불연재로 학교를 지어야 상식에 맞을 것이다. 비극적인 학교 대형화재로 강화된 학교 건설 안전 기준이다. 현장의 무관심과 당국의 안전 매뉴얼 부재가 겹친 탓으로 보이는데, 비단 경기도교육청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다.

교육부와 국토교통부는 학교 건축 안전 법령을 전면 정비하고, 지역 교육당국은 현장 관계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감독을 철저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 학생 안전을 위해서라면 자재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