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악화됐다면 섬에 갇혀 죽으라는 것인데 빈 배라도 들여와서 주민을 태우고 나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 북한의 포격 도발 현장인 연평도를 찾은 경인일보 취재진에게 연평면 부녀회장 김영애씨가 울분에 차 쏟아낸 절규다. 연평도는 지난 5일부터 사흘간 북한군의 포 사격과 우리 군의 대응사격으로 전시에 준하는 공포에 잠겼다.
김씨의 절규는 유사시 피난대책 부재를 걱정하는 서해5도 국민의 불안을 대변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쟁 발발 당일 섬을 탈출하려는 연평도 주민들의 피난 방식은 각자도생에 가까웠다. 전쟁 발발 직전 입항했다 급히 회항한 여객선에 승선한 주민들은 행운이었다. 당국이 연평도행 항로를 폐쇄하자 일부 주민들이 자기들 어선으로 인천으로 대피했을 뿐, 대부분의 주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했다. 다음날이 돼서야 해경 함정이 어린이, 노약자, 환자 등 300여명을 소개하면서 주민 피난이 정상화됐다.
서해5도는 남북의 육해공 무력이 대치하는 세계의 화약고이다. 6·25전쟁 휴전 이후 북한의 도발로 인한 남북간 공식 전쟁도 이곳에 집중됐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접적지역에 8천여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거주한다. 서해5도가 대한민국 영토의 위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현지에서 묵묵히 삶을 영위하는 주민들 덕분이다. 서해5도 국민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고 당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사시 서해5도 국민들의 생명은 얼마나 신속하게 섬에서 본토로 탈출하느냐에 달렸다. 일분일초를 아낀 피난 대책이 있어야 하고 유사시 즉각 작동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모의 훈련을 실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을 겪고서도 유사시 서해5도 국민 피난 대책은 안보인다. 이번에도 연평도 주민들은 섬을 나가려 배를 기다렸지만, 뭍에서는 여객선 운항마저 끊어버렸다고 한다. 정주 여건도 열악한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정부의 구조대책도 없이 각자도생해야 한다면, 국가가 무의미 해진다.
본토 국민들의 시선으로는 서해5도의 지리적 특성상 유사시 서해5도 국민을 주둔 병력과 운명공동체로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타자화의 편견일 뿐이다. 전쟁과 재난 지역의 국민 안전 확보는 정부의 의무와 책임이다. 여건과 방법을 따지느라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군·경과 민간자원을 총망라한 유사시 서해5도 국민 소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사설] 유사시 서해5도 국민 피난 대책 있나
입력 2024-01-09 20:15
수정 2024-01-1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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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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