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고 떠나, 공포만 남은 급식실·(3)] 획기적 예산 증액에도 대책 미미
작년 전기설비 교체 1050억 투입
70%는 정작 취지와 다르게 사용
경기도교육청이 급식실 노동자들의 잇따르는 폐암 발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가스설비를 전기설비로 교체하는 명목으로 마련된 예산 1천억여원 중 70%가량을 취지와 다르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경기도의회 등에 따르면 도의회는 지난 2022년 하반기 '2023년도 경기도교육청 예산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급식기구 및 시설확충' 명목의 예산을 1천50억원 늘렸다. 취지는 급식 노동자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조리실 내 가스설비를 전기설비로 바꾸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 심의에 참여한 교육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정책연구 보고서(경기도 학교급식 종사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를 토대로, 증액 예산을 인덕션 및 자동화기구로 교체하는 데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전기기반의 조리기구를 사용하면, 폐암의 원인으로 꼽히는 '조리흄'의 발생이 현저히 줄어든다. 식재료를 튀기거나 구울 때 발생하는 '조리흄'은 고온의 기름에서 조리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전기기구는 기름을 일정온도로 유지할 수 있어 급식실이 고온으로 치솟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또한 화석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물질도 막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종합적인 판단을 고려했다. 김옥순(교육행정위) 도의원은 "폐암 환자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조리사들의 건강을 위해 최소한 학교 1곳당 인덕션 1대는 설치하자는 게 증액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천50억원의 예산 중 '인덕션 및 자동화기구' 교체에 사용된 예산은 332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은 예산 718억원은 '노후시설 및 기구 교체'(370억원), '현대화사업'(285억원), '신설학교 기구비'(33억원), '환기개선'(30억원) 등에 투입됐다.
조리실무사들은 예산이 허투루 쓰였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13년차 조리실무사 A씨는 "우리 학교에서도 폐 이상소견을 받은 조리사가 나왔지만, 오븐기만 바뀌었을 뿐 인덕션은 여전히 한 대도 없다"며 "앞으로 로봇 조리기구까지 넣는다고 하는데, 조리사들에게는 후처리(청소) 업무만 더 부과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도교육청 측은 내구연한 등의 문제로 기구교체가 쉽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솥 등 설비가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 내용연수가 지나지 않아 교체가 어려워 신청한 학교 자체가 저조한 부분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수차례 공문을 내려보내면서 급식실 시설설비를 개선하는 명목으로 예산을 모두 사용했다"고 밝혔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