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정면충돌로 인한 국가의료대란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지경에 이른 가운데 양측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정부는 22일 전국 40개 의대에 증원을 신청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천명 확대를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이에대해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현직 의사들도 집단 저항을 위한 전열을 정비했다. 전공의 사직과 인턴 임용거부에 이어 현직 의사들도 동참할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여당임에도 정권이 사활을 건 현안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이 없다. 모든 현안에 직설적인 견해를 밝히는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이 문제 만큼은 언급하지 않는다. 당내에 함구령이 내려졌나 의심할 정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5일 "의사는 파업을, 정부는 진압쇼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대란 사태가 총선 민심에 미칠 영향을 간보는 과정의 무책임한 함구이자 무의미한 양비론이다.
여당과 제1야당이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사태의 본질을 정리하고 현안 해결을 위한 총론적 지향을 세울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여야 정권 모두의 현안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10년간 4천명 증원을 뒷받침한 정당이다. 코로나 사태 안정 이후 정원 확대 논의를 재개하기로 의사협회와 정책협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민주당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미뤄진 현안을 윤석열 정부가 이어받았다.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의대 정원 확대를 초당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행적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의대 정원 확대를 미룰 수 없는 국정현안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면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대의와 명분을 잃는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야를 초월해 합의한 국가 목표를 대놓고 거부할 세력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정부와 의료계의 실무 협의가 시작될 테고, 증원 규모와 필수의료 지원 등 세부적인 사항의 조정도 가능해질 것이다.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여당과 야당이 의료현장에서 무너지는 민생을 구경하듯 방치하는 것은 총선 민심 때문이다. 의료대란을 겪는 민심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지켜보면서 자당에 유리한 쪽으로 편승하려는 선거만능적 태도다.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 테이블을 걷어차고 여론전에 전념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