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양육비이행법'
행정제재 대상 4.6%만 전액 다내
정부, 선지급제 내년에 도입 계획
정치권 총선 공약화 진정성 의심
양육비를 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 기로에 섰던 부모가 또다시 실형을 면했다. 미지급자에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양육비이행법이 개정된 뒤 3년 동안 실형 선고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총선을 앞두고 연이어 발표되고 있는 미지급 피해구제안들이 실효성 있는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12단독 하상제 판사는 14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2019년 전 배우자 강모(50대·남)씨와 이혼한 뒤 현재까지 자녀에게 지급하라고 명령받은 1천5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다. 하 판사는 "(A씨가) 경제적 사정이 매우 어려워서 불이행했다는 주장을 일부 감안했다"고 했다.
이날 법정을 찾은 강씨는 선고 직후 분통을 터뜨리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강씨는 4년여 동안 양육비를 못 받으면서도 8세 딸과 친부모까지 홀로 부양하느라 '투잡'을 뛰어왔다고 한다.
그는 "4년 내내 아무리 내놓으라고 요구해도 무시하거나 되레 비꼬는 말투로 '돈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며 "감치명령도 계속 회피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는 증빙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마무리될 수는 없다"고 했다.
앞서 양육비를 장기간 받아내지 못한 한부모들의 피해가 거듭되자 국회는 2021년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행정제재를 넘어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양육비이행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형사고소가 처음 접수된 2022년 10월 이후 미지급자에 실형이 내려진 사례는 이날 선고를 포함해 단 한 건도 없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제재 대상자 504명 중 양육비 전액을 준 부모는 23명(4.6%)에 불과했다.
당국은 연이어 제재 강화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형사처벌 절차상 변화는 없어 미지급자에 엄벌이 내려질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재차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고의적 미지급자에 대한 제재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출국금지나 운전면허 정지 등 행정제재에 앞서 내려져야 했던 '감치명령' 조항을 삭제한 것인데, 형사고소 절차는 해당되지 않아 여전히 감치명령 이후 1년이 지나야만 진행할 수 있다.
한편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앞다퉈 양육비 미지급 해결안을 발표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말뿐이 아닌 실효성 있는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민생토론회에서 2025년 하반기를 목표로 미지급 양육비를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후에 채무자에게 추징하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 모두 양육비 선지급제를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21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올라왔던 법안이 그대로 폐기됐는데도 불구하고 선거를 앞두고 다시 공약으로 내세우는 모습에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