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 산림청 '백두대간과 정맥 관리·개선 간담회'
13개 지자체·정부·연구기관 등 38명 모여
'정당한 개발-구체적 보호 대책' 균형 모색
9개정맥 특별법 보호 없어 개발훼손 계속
AI적용 토지피복변화 예측기법 활용 진단
지방정부 차원 도시계획·제한조치 논의도
"이렇게 많은 부처 관계자분들이, 특히 '정맥'을 주제로 한 자리에 모인 건 30여년 만에 처음 봅니다. 감회가 남다릅니다."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된 정맥은 어떻게 관리돼야 할까. 국토의 뼈대 백두대간에서 팔도 곳곳으로 이어지는 남한 9개 정맥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도, 특별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했다. 광활하고 높푸른 산지들은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채석장으로, 골프장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나갔다.
필요에 의한 정당한 개발이냐 과도한 파괴를 막을 보호 조치냐 중 어느 한쪽이 정답인 문제는 아니다. 다만 개발 일변도 흐름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들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에서 각개전투하던 이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댔다.
막연히 '환경을 보호하자'는 선언적 구호는 없었다. 냉정하게 현황에 맞는 대책이 무엇일지를 두고 2시간 넘게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산림청(청장·남성현)은 지난 5일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백두대간과 정맥 관리·개선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경인일보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 기획보도를 계기로 전국 정맥 관리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기도·서울시·강원도를 비롯한 13개 지자체와 국립산림과학원, 국립공원공단 등 산림 당국 관계자들까지 모두 38명이 배석했다.
간담회 첫 순서로 김우선 백두대간진흥회 인문학연구소장은 '백두대간 한북정맥의 인문학과 미래가치'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김 소장은 15세기 사료부터 흔적이 남겨져 온 백두대간의 시대별 개념을 설명하며, 예부터 대간과 정맥 구분 없이 모든 산줄기의 가치가 동등하게 규정돼 온 점을 강조했다.
특히 한북정맥은 18세기 정조의 언급 기록 등을 토대로 인문학적 가치가 내내 높게 평가되어 왔음에도 현재 훼손 실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일례로 한북정맥 끝자락의 파주 장명산은 1918년 지도와 2024년 위성 영상을 비교해보면 해발고도가 20m가량 줄었다. 광산과 레미콘공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라며 "한북정맥의 미래가치를 지켜나가려면 그나마 보호되고 있는 일부 상징성이 큰 산지를 인문학적 성지(聖地)로 구축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음으로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최근 개발한 전문기법을 바탕으로 백두대간·정맥 관리 방안을 설명했다. 발표자로 나선 김수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는 '토지피복변화 예측기법'에 기반한 정맥 진단 현황을 소개했다.
이 예측기법은 그동안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웠던 정맥 산줄기에 인공지능 심층학습(딥러닝)을 도입, 인구밀도와 지형뿐 아니라 훼손지 분포 등을 반영해 향후 토지 변화 양상을 예측하는 신기술이다.
김 연구사는 한북정맥에 이 예측기법을 적용한 결과 이미 도로와 골프장으로 심각하게 훼손돼 있거나 도시화가 완료돼 복원이 불가능한 구역이 상당수라고 짚었다.
그는 "남아있는 산지도 훼손 압력을 상당히 크게 받고 있는 곳들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나 지자체에서도 해당 구간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향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일반에 공개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정책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훼손 위험 지역에 대응하는 근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후 경인일보 기획취재팀의 '언론이 바라보는 한북정맥' 발표가 진행됐고, 각 기관과 지자체들이 한북정맥 관할 구간 관리 현황과 대책을 공유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먼저 법률상 보호 근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별법으로 강력한 보호를 받는 대간과 달리 정맥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없어 개발행위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정맥은 사유지 구간도 산재한 탓에 상위법상 보호 근거가 없는 이상 재산권 침해 문제에 얽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학기 경기도 산림재해팀장은 "한북정맥 대부분의 구간이 경기북부에 있는데 인구도 거듭 늘어나다 보니 산림 난개발이 심한 현실이지만, 사유지 문제로 직접 법률적인 제재나 보호조치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며 "다만 도유림에 이르는 곳은 관련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종운 파주시 산림휴양과장도 "정책적으로 산지 개발은 농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정상) 허용되는 편이고, 실제 수도권은 산지에 대한 택지개발 압력이 너무 심해서 사유지인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원 상태 복원을 목표하는 것은 여건이 제한적일 수 있어 면밀한 조사를 거쳐 현 상황에 맞게 관리해 나가는 방안이 맞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각 지자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복원에 나서려 해도 인력과 예산의 한계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다수였다. 김진성 포천시 산림경영팀장은 "포천은 한북정맥 구간 중 차지하는 비율이 큰 만큼 2022년부터 실태조사에 나서고 있는데, 개별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예산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지서현 가평군 산림과 주무관은 "세수도 부족한 상황에서 지자체 기존 현안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업무량과 예산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산지복원사업 추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재난대응 등 상시 업무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국유림 구간을 제외한 모든 산지가 사실상 개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셈이지만, 예외로 강원도를 비롯한 접경지 부근은 그나마 군사보호지역이 넓게 지정된 덕에 산지가 보호되고 있다. 접경지 인근 지자체들은 보전 상태가 우수한 사례를 역으로 복원사업 추진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윤식 강원도 산림복원팀장은 "백두대간 보호지역에 걸쳐 있는 강원도와 달리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정맥에 대한 가치평가가 늦게 이뤄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지금이라도 추가 훼손을 방지하도록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화천군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화천군은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없지만, 역으로 보전이 잘 돼 있는 지역을 토대로 여러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도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법률 개선사항을 포함해 현재 맞닥뜨린 한계를 극복할 다양한 대안에 대해서도 제안했다.
서춘원 서울국유림관리소 보호팀장은 "법과 제도 정비가 반드시 먼저 선행돼야 복원이든 관리든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며 "현행 백두대간특별법에서 정맥의 개념만 규정한 것을 넘어, 가령 '13정맥은 관련 법령에서 따로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보존한다'는 하나의 문구만 조항에 넣어도 근거가 될 수 있는 만큼, 여러 대안을 추진해보는 게 어떤가 싶다"고 했다.
이현재 서울시 산림관리팀장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도시계획상으로나 제도적인 개발 제한 조치를 통해 함부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민간에서 자발적인 정맥 보호 분위기를 도모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수진 연구사는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경기도가 최근 기업과 ESG경영 차원의 여러 연계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맥에 대해서도 공익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업과 매칭사업을 추진하고 언론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서춘원 팀장도 "관에서 제도나 예산으로 개선하는 상황만을 기다리기보다는 백두대간진흥회와 같은 보존단체나 산악회 등 민간단체들이 함께 연합해서 정맥 보전 사회운동으로 확장하는 식의 접근법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산림청은 이날 간담회를 시작으로 관계당국의 다양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합해 실질적인 정맥 관리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허남철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장은 "향후 인식 제고와 홍보 강화 등의 방침은 산림청의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이지만, 직접 강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선 간담회를 통해 혹은 개별 의견을 종합해 구체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