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18 광주.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취임 8일째인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요청으로 보수정당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참석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 내빈과 함께 손을 잡고 제창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교내 모의재판의 판사로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던 신임 대통령은 5·18에 각별한 예의를 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비를 걸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을 종결하자 광주 시민이 감동했다. 보수 정당과 5·18과의 거리가 확 좁아졌고, 진보 진영은 보수 대통령의 파격에 당황했다. 1980년 5월 광주가 비로소 정치를 초월하나 싶었다.

3년 후 어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이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의 기념사는 권한대행만큼의 무게 때문인지 무미건조했다. 정치권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참석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하루 전 조촐한 민주묘지 참배로 대신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변인 논평으로 기념식을 대신했다.

쿠데타 주범 전두환에게 사형을 내렸던 청년 윤석열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으로 탄핵됐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그 자체”라 했던 ‘오월 정신’을 스스로 부정해 참혹한 지경에 떨어졌다. 김 후보는 80년대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전설이자 5월 광주와 일심동체였던 정치인이다. 그런 인물이 5·18 전야제 주최 측의 참석 자제 요청을 받고 비감한 표정을 지었다.

5·18은 오랜 세월 진보정권과 정당의 성역이었다. 5·18행사에 참석한 386 청년 정치인들이 단란주점에서 술파티를 벌여도 광주는 보수정당에 단 한 번도 곁을 주지 않았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한 보수의 노력이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물거품이 됐다. 국민의힘은 기념식에 참석할 엄두도 못 냈다. 그나마 청년 보수 이준석의 참석이 위로가 된다. 보수 재건 주도권을 가늠해 볼 장면이다.

정치 때문에 광주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5·18이 보수와 진보의 국경이 된 지가 반세기에 가깝다. 5·18 45주년 기념식, 잠시 느슨해졌던 정치 금줄이 다시 팽팽해진 느낌이다. 고통스러운 원점회귀, 스산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