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작품

‘생추어리 시티’ 고교생 2명 이야기

트럼프의 출생시민권 금지 소송전

美헌법 제14조 어떤 해석 지켜볼 일

韓, 형편이 좋다고 말하긴 쉽지 않아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생추어리 시티’(마티나 마이옥 작, 이오진 연출, 4월22일~5월10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는 미국 내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인 생추어리 시티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우호적인 도시나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생추어리 시티가 상대적으로 이민 법규 집행에 비협조적인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등록 이주민의 삶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이다.

연극의 배경 도시는 생추어리 시티 중 한 곳인 미국의 뉴왁이다. 이곳에서 고등학생인 B와 G의 만남이 시작된다. 두 사람 모두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이다. 집을 나온 G가 B의 집에 머물면서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점차 서로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름이 없다. 알파벳 B와 G로 표시된다. 이름이 없다는 건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름을 상실한 사람의 서사는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미등록 이주아동의 삶이라고 해서 왜 자기 삶의 서사가 없겠는가.

이들은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과연 이들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B의 엄마는 출신국으로 돌아가고 B는 홀로 남게 된다. 반면 G의 엄마는 귀화해서 G가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제 둘 사이에 분할선이 생겼다. G는 시민권이 있고, B는 시민권이 없다. 이제 한 사람은 시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시민이다. 포함과 배제의 분할선이 둘을 갈라놓은 이후에도 여전히 이들은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널 돕고 싶어. 나 시민권자야.” G가 B를 돕기로 한다. G는 빚을 졌으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위 위장 결혼 계획이다. B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결혼 설계이다. 이 설계에는 고난도의 허들이 있다. 심사를 통과하자면 두 사람의 생애 서사를 창작해야만 한다. 만남에서 결혼까지, 그리고 결혼 이후 시간까지 그 모두를 창작해야 한다. 과거의 시간에 속하는 유년의 서사는 기억을 공유하고 그 내용을 암기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시간에 속하는 결혼 생활의 서사는 순전히 창작해서 공유해야 한다. 이 허들이 고난도인 이유는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답이 같아야 한다는 데 있다. 과연 위장 결혼이라는 장치를 통해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둘의 관계에 파국의 균열이 생긴다. G는 대학에 진학하여 보스턴으로 떠났다. B는 뉴왁에 있고, G는 보스턴에 있다. 그렇게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균열을 서로 인정하게 된다. 둘은 서로가 얼마나 멀리 서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단지 장소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거짓말로 살았어.” B는 그동안의 삶을 이 문장으로 요약한다. 시민권이 없는 미등록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증명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온전한 자기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존재 증명에 자기 삶을 최적화해야 한다. 결혼 설계는 한 단면일 뿐이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출생시민권을 금지한 트럼프의 지난 1월 행정명령을 둘러싼 소송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하급심 법원의 행정명령 효력 중단 가처분 결정이 있었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에 귀화했고, 미국의 관할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는 미국 헌법 제14조에 관해 어떤 해석이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우리 사회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가. 한국이 미국보다 형편이 좋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3월20일 법무부가 발표한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에 대한 교육권 보장 연장 및 취업·정주 방안에 그 한계가 잘 담겨 있다. 여전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외국인일 뿐이다. 추방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으로는 포함하면서도 성원권을 부여하지 않은 채 법적 권리를 제약하는 차별로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자기 삶의 서사를 스스로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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