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방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방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지면기사

    연극 ‘순환의 법칙’(안보윤 원작, 최호영 각색·연출, 2025년 12월19~21일,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 제로)은 불안정한 청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청년실업, 다단계, 취업 브로커, 보이스 피싱의 소재를 활용해 청년세대의 불안정한 삶을 묘파하고 있다. 이들의 지난한 삶을 드러내는 장치는 원한의 순환적 상상력이다. 등장인물은 미주, 도운 그리고 남자이다. 미주는 찜질방에서 먹어치운 미역국만 백 그릇이 넘는다. 벌써 두 달째다. 도운의 돈을 훔쳐 도망친 이래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 그런 미주에게 호텔 무료 숙박권이 날아든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점점 고장나고 있는 것 같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점점 고장나고 있는 것 같다 지면기사

    연극 ‘663GP 폐기물 배출 현황 점검 결과 보고(안)’(박형준 작, 박한별 연출, 11월21~2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전협정 이후 70년이 지난 시점의 최전방 GP가 배경이다. GP는 비무장지대(DMZ) 안에 자리한 휴전선 감시초소를 말한다. 그곳에서 서른다섯 명의 젊은 군인이 복무하고 있다. 최전방이 주는 긴장감, 폐쇄적인 공간이 주는 압박감이 무대 공간에 넘친다. 663GP는 560미터의 거리를 두고 북한군 GP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연극의 중심인물은 DMZ에서 다른 사람이 못 보는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지면기사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신효진 작, 이래은 연출, 10월27일~11월11일, 국립정동극장 세실)는 어떤 장소가 무대의 공간으로 적합한지 아닌지를 묻게 하는 작품이다. 호텔 로비를 장소로 설정했으니 말이다. 연극에 적합한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대의 이야기가 더 선호하는 장소는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응접실, 마당, 법정, 그리고 광장이 그런 장소에 해당한다. 이러한 장소를 오래도록 무대 공간으로 설정해 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호텔 로비를 무대 공간으로 설정한 작품은 흔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호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빨래를 배우고 싶은 게 아니야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빨래를 배우고 싶은 게 아니야 지면기사

    연극 ‘도비왈라’(이왕혁 작·연출, 9월21일~10월3일, 국립정동극장 세실)는 인도의 빨래꾼 도비왈라를 다루고 있다. 도비왈라는 빨래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인도 바라나시의 빨래터인 도비가트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도비왈라의 이야기가 여자 빨래꾼인 실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대 배경은 도비가트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던 2000년대 초이다. “빨래꾼 자식이 빨래를 해야지.” 실파의 아버지 사젠은 평생 빨래 노동을 하면서 빨래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는다.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실파에게도 투덜거리거나 야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는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여기가 우리 집이야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여기가 우리 집이야 지면기사

    연극 ‘초록빛 목소리’(안정민 작, 이래은 연출, 8월23~2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매천이 배경이다. 인간을 홀리고 초록빛 불꽃을 만드는 신비, 인형으로 변신하는 수민, 무지개떡을 만드는 미라, 예쁜 걸 좋아하는 지선. 도깨비들이 철거 위기에 놓인 매천의 도깨비굴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이야기이다. 연극 초록빛 목소리는 신화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반딧불이가 사라지고 없는 세계에 도깨비불이라고 남아 있을까 싶으나 도깨비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나 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주목을 받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아픈 기억 속에 갇혀 버렸대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아픈 기억 속에 갇혀 버렸대 지면기사

    연극 ‘집으로 돌아가는 길’(박선희 구성·연출, 7월31일~8월8일, 연우 소극장)의 부제는 형제복지원의 기억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사안에 따르면(2022), 1960년 7월20일부터 1992년 8월20일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수용 생활 중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한 사건이다. 657명이 사망했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미안하다는 말뿐이에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미안하다는 말뿐이에요 지면기사

    연극 ‘하미’(김수정 작·연출, 7월5~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목의 하미는 마을 이름이다. 하미 마을은 퐁니·퐁녓 마을과 함께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곳이다. 연극 하미에서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을 현재화하는 장치는 평화여행이다. 평화여행단이 2025년 2월 베트남 다낭으로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평화여행은 하미 마을 위령비, 밀라이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여정을 포함하면서 베트남 전쟁을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지 않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피부색을 팔고 싶진 않아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피부색을 팔고 싶진 않아요 지면기사

    연극 ‘엔들링스’(셀린 송 작, 이래은 연출, 5월20일~6월7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는 이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주의 이야기는 셀린 송(Celine Song)과 연결된다. 셀린 송은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는 동양인 여성 이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열두 살에 서울에서 토론토로, 스물세 살에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경험이 이 작품에 녹아 있다. 이주의 이야기는 맨해튼을 배경으로 극작가 하영의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한국에서 초연인 엔들링스는 2019년 아메리칸 레퍼토리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미국 초연에서는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너무 오래 거짓말로 살았어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너무 오래 거짓말로 살았어 지면기사

    연극 ‘생추어리 시티’(마티나 마이옥 작, 이오진 연출, 4월22일~5월10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는 미국 내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인 생추어리 시티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우호적인 도시나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생추어리 시티가 상대적으로 이민 법규 집행에 비협조적인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등록 이주민의 삶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이다. 연극의 배경 도시는 생추어리 시티 중 한 곳인 미국의 뉴왁이다. 이곳에서 고등학생인 B와 G의 만남이 시작된다. 두 사람 모두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다음 주에 없어지잖아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다음 주에 없어지잖아요 지면기사

    사라지는 기숙사에 남겨진 흔적들 마지막에 남긴 낙서 누가 읽는가 이 불균형으로 극적 긴장감 더해 기억의 장소이자 연대의 장소 상실 벚꽃엔딩, 새로운 시작 의미 담아 연극 ‘얼떨결에 종언’(데구치 메이·오오타 유우시 작, 변영진 연출, 3월20일~4월13일, 소극장 산울림)은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경은 2013년 3월의 교토대학교 기숙사이다. 이 기숙사는 1913년에 지은 목조건물이다. 백 년이 넘었다. 낡고 헐었다. 기숙사를 허물려고 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건물만이 아니다. 장소가 사라지면 함께한 시간이 흩어진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