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은 말했다
능력 있는 개인이 성공하는 게 아닌
기득권 구조가 능력주의 실체라고
실질적 평등 정책, 공공 가치 지향
분배 정의 실현, 독점 구조 해체해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이라는 책에서 능력주의에 대해서 그 허상을 비판하고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겉보기에는 정의롭고 공정한 원칙처럼 보인다. 누구나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개인의 성취욕을 자극하며 교육, 채용, 보상체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은 이 능력주의가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과 오만, 좌절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는 수치심을 심는다”고 말한다. 능력 있는 개인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이 스스로를 능력자로 포장하며 자신의 지위를 세습해나가는 구조가 능력주의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한국사회는 이미 학벌-직업-지위로 연결되는 강력한 엘리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작동하고 있다. 명문대학, 사법시험·로스쿨, 고위공직자, 언론, 재벌 그리고 대형 로펌 및 금융권 등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고 있으며 능력이라는 이름 아래 대대손손 세습이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사회의 작동기제로 자리 잡았다. 이를테면 서울 강남 3구 출신과 고소득층 자녀들이 SKY 진학률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로스쿨이나 의대 진학, 고위공직자 등용 과정에서도 금수저 출신이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능력은 곧 노력의 결과’라는 허상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출발선이 다르고 구조적 특권이 능력으로 위장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의 신화를 극복하고 엘리트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단순한 기계적 공정성이나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지역균형 선발을 강화하고 고교 서열화와 대학 학벌의 구조를 과감히 해체해 나가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기회 보장 등 출발점이 차이 나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극 개선하여 궁극적으로는 결과의 평등까지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개인적 경쟁을 넘어서 공공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 개인적 성취보다는 공공에 대한 기여를 더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명문학교란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는 학교가 아니라 이 사회에 얼마나 유의미한 기여를 많이 하는 사람을 배출하는가로 평가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세 번째로는 정책을 통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고소득자, 고학력자의 세금 및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세금제도와 분배구조를 통해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자본의 논리에 우리 사회는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약자를 보호하는 억강부약 정책을 통해 사회적 격차의 확대를 조금이라도 억제해 나가지 않으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막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엘리트 독점 구조를 과감히 해체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검찰, 경찰, 군, 사법부를 특정 학벌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내란이 일어났다는 지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강고한 엘리트 카르텔은 언론, 정치권, 경제계, 학계 등 사회 곳곳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엘리트 카르텔 혁파를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능력주의는 겉으로는 공정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 카르텔은 능력주의가 갖는 폐해를 드러내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제는 능력주의의 신화를 넘어 공정의 진짜 의미를 회복하고 연대와 배려의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육과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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