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7일 인천 서구 심곡동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2세 문하은 양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됐다. 어머니는 일터인 식당에 출근했고, 아버지는 신장 투석을 받느라 병원에 간 사이에 방학 중인 하은이가 혼자 집을 지켰다. 하은이는 사고 발생 5일 만에 숨졌다. 부모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떠난 착한 아이로 기억되면 좋겠다”며 병원의 장기 기증 권유에 동의했다.
먹고 살 돈 버느라, 살려고 치료받느라 혼자 집에 남겨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경, 공감 말고는 헤아릴 길이 없다. 인천 지역사회는 십시일반의 성금으로 부모를 위로했다. 300만원을 기부한 익명의 부부도 있었다. 인천시교육청도 유족 지원에 나섰다. 하은이 부모의 고통에 공감할 다른 도리가 없었을 테다.
유독 법만 냉정했다. 인천 시민들이 부모를 위로 중일 때 경찰은 조용히 수사를 했다. 장기 기증 다음날 하은이를 부검한 경찰은 하은이 엄마를 검찰에 송치했다. 하은이가 홀로 집에서 위험에 처한 점과 집안 청결 상태 등 여러 정황으로 아동복지법상 방임죄가 있다고 본 것이다. 부검에서 학대 흔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점입가경이다. 최근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을 받은 경찰은 친부도 내사하고 있단다.
친모 송치 때부터 여론이 발끈했다. “방임은 의식적으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인데 여건이 안 된 것까지 방임으로 처벌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셈”이라는 유승민 전 국회의원의 일침이 정곡을 찌른다. 한부모, 맞벌이, 출장 등 다양한 여건으로 아이를 홀로 집에 둘 수밖에 없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부모 자식의 천부적 연대로 단단한 가정이 대다수일 것이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이 속출하는 엽기적인 사회다. 하은이 사건에 민감한 경찰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경찰이 하은이 부모를 오해했다면, 법이 하은이네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결과에 이른다. 법 이전에 이미 죄책감의 십자가를 짊어진 부모다. 집안 청결 상태가 아니라 친척, 친구, 이웃, 학교생활기록부, 사진 등 유품으로 하은이 가족의 유대를 확인해야 맞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법이 문지방을 넘어 한 가정의 불행에 개입하려면, 신중하게 저마다의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윤인수 주필